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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02. 2022

<11>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은 내 마음만이 아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작은 일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는 일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 아는 마음속 스트레스의 흔적은 남는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도 베란다 텃밭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며칠 집 비울 일이 생기면 물을 언제 어떻게 주고 환기는 어떻게 하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때면 며칠 전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베란다를 들락거리며 전전긍긍이다.     


오랜만에 부산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물 주는 시기를 조절하고 거름 될 만한 것들을 주고 잎도 개수에 맞춰서 미리미리 따주고 출발하는 날 아침에는 밑으로 물이 흘러 넘칠 정도로 충분히 물을 주었다. 대비를 한다고 하고 갔지만 부산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베란다 아이들 생각에 내내 불편했다. 부쩍 더워진 기온에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에 아무리 베란다라지만 요즘 같아서는 식물을 키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동안 아이들이 제발 무사했기를 빌면서. 다행히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았다. 다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던 아이들이 1센티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아 조금 의아하긴 했다. 뜨거운 날씨에 며칠 동안 목말랐을 아이들에게 물을 듬뿍 주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부터 발생했다. 아침에 보니 상추 한 대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동안 목이 많이 말랐나? 물을 듬뿍 더 주고 연신 왔다 갔다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한 대가 더 늘어졌다. 물 부족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디까지나 이곳은 베란다 실험실이니 상추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볼 요량으로 뿌리를 뽑아봤다. 별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쑥 뽑혀 올라왔다. 물 부족이 아니라 과잉으로 뿌리가 다 녹아 없었던 것이다. 뜨거운 날씨에 혹시라도 꽃대가 올라올까 봐 집을 비우기 전에 평소보다 조금 더 잎을 따준 게 문제가 됐을 수 있다. 요맘때 상추는 열심히 물을 먹고 잎을 통해 마음껏 증발시키면서 쑥쑥 크는데 잎을 다 따버리고는 물만 덤벙덤벙 주었으니 상추 두 대가 익사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상추들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갑자기 낮 기온이 한여름처럼 오르고 비다운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먹어치우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었는데...      


식물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거다. 조건이 맞지 않는 환경에서 발아하느라 스트레스, 옮겨 심기느라 스트레스, 너무 더워 스트레스, 물이 부족해 스트레스, 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 키우는 식집사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제공하지만 알고보면 식물은 그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모든 작물은 기르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식물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정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죽어버린다. 너른 텃밭도 아니고 고작 손바닥만 한 베란다에 두고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맞춰주지 못해 죽게 만들었다. 역시 나는 유능한 식집사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가?


아.. 이거 너무 스트레스다!!




며칠 전까지도 이렇게 싱싱했던 상추



오전


오후



크지 못하고 잎만 만들어내는 상추




상추 실험은 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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