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에는 자아가 비대해서 성취욕을 채워야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었을 그때에도 그랬던 듯하다. 하지만, 그 어릴 때와는 달리 서른이란 나이엔 그것이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임을 알고서 시작한 일이었다.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나이에 기껏 했던 짓이 공부하고 시험 치는 일이었으니. 그래서 기를 쓰고 죽을 듯이 자신을 몰아붙였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고,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한 부정으로 시작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가진 것은 많지 않았었지만 아내와 결혼을 했다. 뒤늦은 혼인을 한다고 데리고 온 사내가 그다지 변변치 않았으나, 반갑게 맞아주셨던 어른들이었다. 명민하고 예쁜 딸아이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아들도 연이어서 얻었다. 세월이 제법 흘러가서 이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사니 걱정을 더는가 싶었던 사위 놈이 암수술을 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 쓰라리고 답답하셨을까. 노구를 이끌고 운동삼아 다녀 간다고 하셨으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매일 병원을 찾으신 그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랬던 어른이 어제는 손녀와 손자에게 방금 하셨던 말을 되풀이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셨어 그런 거야." 라고 엄마가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벌써 할아버지의 되풀이되는 이야기에 그것을 알아채고는, 불과 열흘 전쯤의 할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에도 귀를 기울이고 응대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 마디 더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내가 낄 데가 아닌 듯했다. 나중에 어른이 혼잣말을 되뇌고, 아무도 응대를 하지 않을 그때가 되어서야 흘려 들어셔도 좋을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어른께서는 엊그제 친구 누군가가 또 몰래 먼저 갔다고 하시며, 구순을 지나 망백까지는 살아야 할 텐데 하셨으나, 나는 상수를 누리실 어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토록 꼬장꼬장하셨던 어른이셨다. 이따금씩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른의 젊었을 적 시절을 식구들이 이야기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짓눌러 오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아직은 몰라도 좋을 그런 세월의 무게 말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점점 더 나를 옥죄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