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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이 운명이었을까

6

by 몽유 Jan 20. 2025

"지훈 씨, 타세요. 우리 오늘은 야외로 가요."

"어디로 가려고요?"

"바다 어때요? 바다 좋아하세요?"

"..."


지훈이 조수석 차문을 열고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중에도 수현은 무엇이 그녀를 신나게 했는지...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지훈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지훈은 수현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았다. 살짝 미소를 띤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수현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여요."

"네, 점심시간이 이렇게나 기다려지다니. 저도 놀랐어요. 지훈 씨는 어때요?ㅎㅎ"

"..."

"ㅎㅎㅎ, 농담이에요. 그런데,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건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네, 저도 수현 씨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요."

"..."


그렇게 수현과 지훈이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올림픽대로를 따라 부쩍 늘어난 차량들 사이에서 파란 스포츠카도 엉거주춤거렸다. 혹시나 하며 힐끔거렸던 한남대교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수현이 객쩍은 농담을 하면서도 조바심을 낸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핸들을 붙잡고 있던 수현의 하얀 손이 참 작고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그 순간 지훈은 수현의 작고 귀여운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것은 지훈 스스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이루어진 것이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힘이 가끔씩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오늘은 지훈의 순서였나 보다.

 

아무런 말 없이 갑작스레 자신의 손에 얹힌 지훈의 손은 따뜻했다. 수현은 그런 지훈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지훈의 따뜻한 온기는 수현의 손에서 곧장 가슴을 거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머릿속에 이르러서는 몽롱한 꿈결에서나 느껴지던 아련함이 함께 했다. 수현은 아무런 말 없이 지훈의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보았다. 그리곤 눈길을 돌려서 줄지어 늘어선 차량들의 긴 행렬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몸을 비틀면서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벌레들의 긴 행렬과도 같은 모습이었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픈 마음만 간절해졌다.


수현의 파란 스포츠카는 한남대교를 오르지는 않았다. 올림픽대로를 따라서 곧장 30여분 남짓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서 꼼지락거리는 지동차의 긴 행렬을 뒤로하고 한강을 따라갔다. 그 시간 동안 대학을 다닐 때처럼 표를 구걸할 때는 허리까지 꺾여라 인사를 하고서는 의원이 되고 난 후엔 여전히 나 몰라라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을 지났다. 그리고,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신입생 환영회 파트너와 한참을 올랐던 행주산성도 지나쳤다. 그때도 지훈은 그를 위해 기꺼이 파트너가 되어준 그녀에게 하나의 선물이라도 더 주려고 온 정성을 다해 모든 게임에 나갔었다. 선배들은 쟤가 왜 저러나 하면서도 재미는 있었는지 나중엔 지훈을 응원하기도 했던 신입생 환영파티였다. 알록달록 조명 몇이 중앙의 백색조명과 대비를 이뤘지만, 어두컴컴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지훈은 그날 처음 본 그녀를 위해 없던 객기를 부렸던 것이었다. 그땐 왜 그랬을까?


수현이 그나마 가까운 인천 앞바다를 향해 달려가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대로 더 달려갔으면 하는 작은 기대도 하는 지훈이었다. 그래야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검푸른 바다는 아닐지라도 진짜 바다를 마주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파란 스포츠카는 마침내 짧지 않은 이동을 멈췄고, 아직은 어린 나무들이 수줍게 서 있는 호수가 보였다. 수현이 말했던 바다는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한 호수였다. 짧은 점심시간동안 바다를 다녀온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지훈은 그런 줄 알면서도 내심 기대를 했었다. 수현과 함께 차에서 내려 공원을 거니는동안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허했다. 수현이 지훈의 곁으로 다가와 그 작고 하얀 손으로 살며시 그의 손을 잡을 때까지는 그랬다.


운전대에 올려진 수현의 손은 작고 하얀, 햇볕이 얹혀진 물기 머금은 조약돌처럼 반짝거렸다. 이따금씩 지훈은 그토록 반짝거리는 조약돌을 갖고 싶었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서는 꺼내보고 싶을 때마다 손쉽게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수현과 지훈은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해서는 아니될 듯한 묘한 긴장감이 둘에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서둘러 먼저 떨어져서는 마른 낙엽을 밟을 때마다 가볍게 바사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처럼 가볍게 잡은 둘의 손은 참 따뜻했다. 이따금씩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엷은 미소를 반복해서 지었다. 그렇게 지훈과 수현은 서로의 온기를 가슴 속에 차곡차곡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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