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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않은 편지

1. 이제 이별을 이야기해야 한다

by 몽유

이제 이별을 이야기해야 한다.

창문 밖 나뭇잎이 지는 소리,

그게 자꾸 내 마음 같아서

말도 없이 가라앉던 밤들이었다.

괜찮다고, 다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지운 메시지들을

너는 알까.

한때는 계절처럼 서로를 입고 벗었지만

지금은 옷자락조차 스치지 않는다.

다정함은 의무가 되었고,

기억은 짐이 되었다.


이제, 이별을 이야기해야 한다.

조금 늦은 계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을

하나씩, 놓아주듯 말해야 한다.

서연은 늘 말이 없었다.

속으로 오래 앓고, 끝내 말이 되어버린 감정들을

천천히 꺼내 놓는 사람이었다.

진우는 그런 서연을 이해하는 듯, 때론 모른 체하며

그녀 곁을 오래 지켜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던 것들이

점점 서로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서로를 아끼는 방식이 달라졌고,

마침내 서연은 진우에게 이별을 꺼냈다.

진우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서 여러 번

그 말을 미리 들어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침은 조용했다.

진우의 발자국 소리도,

컵을 씻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심하게 반사되는 빛이 방 안 가득 번졌다.


익숙했던 냄새가 사라졌다.

진우가 쓰던 샴푸, 전자레인지에 데우던 우유 냄새,

그 자리에 남은 건 비워진 공간과 기이한 정적뿐.

서연은 처음으로, 식탁에 혼자 앉았다.

커피를 내리며 문득 진우의 컵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몸 어딘가가 헐거운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 아프지는 않은데,

계속 만지게 되는 상처처럼.

거실을 치우고, 이불을 개고, 진우의 흔적을 정리했다.

사진은 그대로 두었다.

지울 용기가 없었다.

아니, 아직은 진우가 떠났다는 걸

완전히 믿고 싶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방 안을 채우자,

그제야 눈물이 났다.

혼자가 된다는 건, 언제나 그 어둠 속에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서연은 혼자서 등을 돌려 누웠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이제는, 등 너머에 누군가가 없다는 걸 알기에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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