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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May 22. 2024

다시 바다에 서다

- 두 번째 퇴사를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블록을 제작하고, 조립하는 샵장을 지나칠 때면 코끝을 스치는 용접가스 냄새가 메스꺼움을 일으켰다.

왜 갑작스레 몸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날 이후로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계속된 몸의 반응이었다.

언젠가는 업무 때문에 협력사 지원팀에 들어서자마자 한참 전의 메스꺼움에 화장실을 찾기도 했는데, 항문의 문제가 아닌 구토 때문이었다.


그날 예의라곤 없던 협력사 지원팀의 여직원과 짧은 언쟁을 벌였는데, 갑질로 여겨졌던 이전 몇 차례의 태도에 겹쳐진 짜증이 났었나 보다.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의식의 바닥에는 자신은 정규직이라는 편협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인데, 대개 이런 이들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조직생활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딜 가나 직원이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인식과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넓게 펼쳐진 야드에 숱하게 널려 있는 블록과 철판과 파이프 그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유난히도 차가웠다.

고3 대입학력고사를 치르고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한겨울의 양식장 그 차가운 바닷바람과 엇비슷했고, 아프기 전 겨울밤낚시로 나섰던 명사해수욕장의 똥바람 그것과도 마찬가지의 그 차가움이었다.


그래도 겨울은 금방 지나는 사계절 중 하나였다.

어느덧 이따금씩 불어오는 계절풍이 봄이 왔음을 알려 주었고, 나의 병치레도 안정기에 접어드는지 크게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다.

여전히 사나흘만에 찾아오는 화장실 전투는 이제 횟수가 많이 줄어서 최대 20여 차례였다.

편안하게 지나가면 10여 차례가 되질 않았으니, 주치의도 놀라워하며 자신의 의술에 만족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어쨌거나 난 사나흘만에 한 번씩 힘들긴 했지만, 점점 더 약해지는 항문과의 전투가 나쁘진 않았다.

환우회의 다른 분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으니 확실히 내 몸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무렵이었을 거다.

조금만 더 건강을 회복하면 원래의 업무로 복귀해서 현장으로 돌아가고, 오일맨으로서의 꿈을 다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왔다 갔다 했던 것이.

나도 마음속 어딘가에선 그것을 원했던 듯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의 도움을 또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겨울을 지나면서 벌써 몇 개월째 딴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아내와 함께 이야기 나눴던 노년의 생활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고 나면 작은 배를 하나 장만해서 크게 욕심내지 않고, 낚싯배로 어선으로 살아가자고 했던 60대 중반에 이뤘으면 했던 바람을 앞당기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낚싯배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있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이따금씩 만나기도 했던 낚시방 점주이면서 작은 낚싯배를 운영했던 이에게 내 계획을 알려주어 그의 배사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웃기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 프레임을 구성해 주었으며, 인터넷을 이용한 홍보방법, 포스트를 쓸 때의 유의점 등을 가르쳐 줬는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사업이 안된다며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몇 개월 뒤에 실제로 내가 배를 사서 그에게 가르쳐줬던 가족낚시 등을 운영하니 내가 자신을 모방하고 따라 한다며 훼방을 놓기도 했다. 

후에 이런 류의 인간유형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라서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봄바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아내도 내 고집을 꺽지 못하고 허락을 했더랬다.

그 당시에 아내가 허락하면서 내건 유일한 조건이 그 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해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으니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마음이다.


그렇게 계속 출근을 하면서 틈틈이 사람들을 만났으며, 주말과 휴일에는 배를 보러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했고 4월의 어느 햇살이 좋은 날에 배를 진수하고 첫 출항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다가 내어주는 딱 그만큼으로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 퇴사를 하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면서 건강은 더욱 좋아진 듯하다.

혼자서 어부질을 할 때는 그것대로의 재미도 있으며, 낚싯배로 영업을 할 때는 그 나름의 즐거움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사람을 상대로 영업을 할 때엔 그 어느 업종들처럼 나랑 코드가 잘 맞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을 때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인간유형을 만나기도 하며 스트레스가 될 뻔한 경우도 많았다 싶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죽음만큼 참혹한 때가 있을까 생각하며 욕 한마디 하고 뒤돌아 앉는 것을 배우기도 했으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알 수 없었던 가장 큰 깨달음 중의 하나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눈치 보며 내 행동을 제약하게 되는 함정과 같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한정되어 주어진 하루의 시간이다.

그러나, 삶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한정되어 주어지진 않는다.

그것이 내 삶을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이유이고,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12년이 지났습니다.

12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도 있습니다.

분명히 어떤 무엇인가가 있는데, 모자란 뇌의 용량에 의해서 그려지지 않는 장면은 저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래저래 참 고마운 그녀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제겐 영원의 하루 같았던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기억의 자취를 따라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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