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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May 15. 2024

화장실 전투 절반의 작전성공

벼룩도 낯짝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가야 했던 화장실을 이틀 만에 가더니, 사흘이 되고 나흘이 되었다.

먹는 양을 줄여서일까?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양을 줄여도 또, 줄여진 그만큼으로 매일 배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바람대로 적어진 음식의 양에 몸이 적응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어느 정도의 양으로 대장에 모았다가 배출하는 것일까?

직장이 전부 잘려나가고 없는데, 어디에 저장을 하는 걸까?


외래방문 때 주치의가 화장실 가는 횟수랑 이것저것 물어볼 때 궁금해서 나도 물어봤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먹는 음식을 조금씩 늘리란다.

- 절대로 그러고 싶진 않은데 말이지... 먼 훗날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나흘에 하루는 고생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환우회를 들어가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더한 욕심에는 한 번 열리기 시작해서 몇 차례 시원스레 볼 일로 끝나좋았겠지만, 역시나 찔끔찔끔으로 적게는 20여 회 많게는 60여 회를 화장실을 들락거리곤 했다.

수십 차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동안에 헐어서 쓰라항문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개 저녁이 지난 시간부터 시작되어 새벽녘이면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드물게 그 시간을 벗어날 때가 있긴 했지만.


사나흘만에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고 나면, 또 사나흘은 걱정 없이 편안하기도 했으니 틈이 생긴 사나흘에 아이들과 산책을 나서기도 했고, 본가나 처가를 찾기도 했다.

간간이 뭘 잘못 먹어 탈이 나는 날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수와 라면 같은 밀가루음식,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이나 튀김, 고구마와 감자 삶거나 찐 것 그리고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

이것들은 먹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그리고, 훨씬 더 자극적인 고통을 주기도 했고, 이따금씩은 쑤셔대는 듯한 복통을 주기도 했다.

수술을 하기 전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음식들인데, 근 5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위에 음식물을 내려보내지 않아서 위의 기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그때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주치의가 했던 위의 기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말이 맞는 듯도 하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따금씩 참지 않고, 또는 힘들더라도 속을 비우겠다 마음먹고 일부러 매운 음식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은 날은 의례히 고생스럽게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바빴는데, 요 근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서 이젠 속이 불편해서 비우고 싶을 때 매운 음식과 밀가루 음식을 먹어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것이 잘 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확실한 것은 몸이 조금 더 좋아졌다는 것이겠지 싶다.




여하튼, 음식물과 화장실 문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몸관리에 대한 요령에 익숙해지자 뜻밖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 가벼운 운동을 겸한 산책 말고는 드물게 아이들과의 외출이 전부였으니, 심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심적 상태였다.

남자는 몸이 아프지 않은 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데, 그것이 일을 하는 이유라는데.

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을 때에는 움직일 수만 있으면 좋겠다 했지만, 움직일만하니 욕심이 더 생기는 것이다.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심심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름 몸관리가 된다고 한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었고, 혹시나 불시에 문제가 생기면 일이고 뭐고 곤란해지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덤벼들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지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화장실 문제와 관련한 몸관리에 더욱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간간이 지나친 자신감에 조금 무리했다 싶은 날은 또 문제를 만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놀랄 정도로 횟수가  줄었다.

줄어든 횟수만큼이나 쓰라린 항문통도 사라졌다.

그러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오늘처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는 날이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된, 조선소와의 인연을 만들어준 지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물론, 입원 후 수술, 퇴원을 하고 다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계속 만남을 갖기도 했던 고마운 사람이다.

몸도 많이 좋아졌으니, 무엇보다 심심하지 않냐며 일하러 나오라는 말을 건네받았다.

내 사정을 모두 알고 있으니 여타의 편의를 봐주겠다는데, 막상 출근하려고 하니 또 그건 아닌 듯도 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고마움과 미안함, 거기다가 민망스러움까지 더해진 복잡 미묘한 심적 상태의 나였다.

하지만, 뭘 그렇게 머뭇거리냐며 현장에 나가는 일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며 몸관리를 하면 되지 않겠냐 하며 나보다 더 가족을 챙기니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그래,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닥치는 대로 살자의 마음도 있었나 보다.

9개월 만에 조선소로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현장에서의 공정 검사업무가 아닌 사무실 업무는 그다지 불편할 것이 없었다.

예전 한참 전에도 그랬지만, 전임자가 일을 제대로 정리를 해놓지 않아서 그것을 정리하고 내 눈에 차게 만드는 일이 성가시긴 했지만,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그다음은 덧붙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불편할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조선소의 운영시스템도 알게 되었는데, 참 불합리한 것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예전 회사생활에선 전혀 알 수 없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적 처우에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외국인 근로자와 생산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생각들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따금씩 그것이 몸에 무리를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열성적으로 일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출근길에 항문이 사고를 쳐서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정리하다 보니 한참이나 늦은 출근을 하기도 했고, 일과 중에 또 사고를 쳐서 이른 퇴근을 하기도 했으니, 환자용 디펜더를 몇 개씩 갖고 다녔어도 대표였던 지인께 끼친 민폐가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이긴 했지만 몸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사무실 업무가 편해져만 갔는데,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에선 미안함이 덩치를 키우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해를 넘기면서 차가운 철판들 사이로 불어오는 조선소의 겨울바람이 주는 차가움이 마음속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지막 연재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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