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네
시간마다 지나는 버스길이 살짝 꺾이는 마을 끝자락에는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간판의 글자는 오래되어 색이 바랬고, 문 앞에는 화분 몇 개가 늘 같은 자리에서 계절을 버티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순자네"라고 부른다.
이른 새벽, 순자는 어제와 같은 순서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당을 쓸고, 물을 끓이고, 가마솥에 국을 올린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국이 끓기 시작하면,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을 찾아든다.
밭에서 일하던 노인,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 말없이 밥만 먹고 가는 트럭 기사.
순자는 손님이 많이 들어 식당이 북적이고 소란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들에게 한마디의 늘 같은 말을 한다.
“많이 드세요.”
그 짧은 말에는 투박한 뚝배기 그릇에서 김을 내는 국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데우는 온기가 있다. 그녀는 드물지 않게 밥값을 받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의 작은 장부에 점 하나를 찍어 놓는데, 순자에게는 그것이 기억하는 방식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 몸이 아픈 노인, 돈을 잃어버린 학생.
그 점들은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작은 표시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어떤 선의는 말해지는 순간 작아지기도 한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배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순자는 식당 불을 바로 끄지 않았다. 주전자에 남은 물을 비우고 마루 끝에 앉아 천천히 눈 내리는 길을 바라보는데,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마치 국 냄새처럼 천천히 떠올랐다.
그녀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다. 도시의 작은 식당에서 일하던 시절, 순자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새벽마다 일을 나갔고, 밤이면 늘 같은 말을 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작은 식당 하나 하자.”
큰 꿈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고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곳.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해 겨울 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이별만큼이나 짧은 문장으로 전해졌다. 순자는 한동안 밥 냄새를 맡지 못했다. 냄비를 올리면 그 사람의 말이 떠올랐고 국이 끓기 시작하면 목이 먼저 메어 왔다. 그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하얀 눈이 발길을 붙잡으며 엉거주춤 깊어가던 저녁, 배고픈 노인이 가게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은 이미 닫혀 있었지만, 그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순자는 그날 다시 불을 켰다.
서너 가지 찬거리를 준비하며 뜨겁게 끓인 국을 적당한 온기로 식혀 노인에게 내어 주었다. 노인은 말없이 김이 피어나는 국을 먹었다. 그리고 다 먹은 뒤 천천히 말했다.
“사람이 사는 집 냄새가 나네.”
노인의 그 말이 순자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날 이후 순자는 다시 국을 끓이기 시작했고, 마을 끝에 식당을 낸 것은 그로부터 몇 해 뒤였다.
간판을 달던 날 순자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면 되겠지.”
마치 누군가에게 대답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이 내리던 밤, 식당 안에서는 국 냄새가 천천히 식어 갔다.
순자는 마지막으로 불을 끄기 전, 냄비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데, 국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불을 끄고 혼잣말을 했다.
“오늘도 잘 먹었겠지.”
그 말은 손님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아주 오래전 함께 식당을 꿈꾸던 사람에게 전하는 인사이기도 했다. 식당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끝 작은 식당에는 사람이 사는 집 냄새가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