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면 꼭 비가 내렸던 경험은 누구나 한두 차례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과 나는 으레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학교가 지어진 자리가 원래 무덤자리였는데, 원혼들을 제대로 달래지도 않고 학교건물을 지어서 그렇다."
"학교를 지을 때 신성시되던 동물을 죽이거나 나무를 베어서 벌을 받는다." 등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가 맞나 보다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6학년 봄소풍 때 있었던 일을 기억속에서 꺼집어낸 것이라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봐주시면 좋겠다.
이날은 소풍을 갔던 다른 날과 달리 파란 하늘에 무척이나 좋은 날씨에 재미난 소풍이 기대되었던 날이다.
소풍이라고 하면 으레 그렇듯 아이들은 무척이나 들뜬 기분으로 알록달록 소풍복장을 하고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소풍은 해수욕장으로 가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학교에서 걸어서 30-40분이 걸리는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신양이란 마을을 지났었고, 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야트막한 언덕에 올랐을 때에 오래돼 보이는 낡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너희들 소풍을 가는구나, 재밌겠네. 맛있는 것은 많이 싸왔느냐?"
하며 물어보고는 혀를 차고, 끌끌거렸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누나에게 이야기하니 예전에도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암튼,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오전에는 반 대항 게임을 하며 즐겁게 놀았고, 그 후에는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먹은 후에 보물 찾기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물 찾기를 하려고 백사장에 모두들 모였을 그때.
여태까지 그렇게나 맑고 파랗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고, 세상이 깜깜해지더니 얼마나 세찬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던지 다들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소나기를 맞으며 해수욕장을 빙 두르고 있던 가게 쪽으로 냅다 비를 피해 달려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몇몇의 아이들이 해수욕장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리가 불러도 굳은 듯이 그 자리에 서서 모두들 서쪽 하늘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님 몇 분과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갔더니 손가락으로 서쪽 하늘을 가리키는데, 아이들을 데리러 나갔던 선생님들과 아이들까지 굳은 듯이 그 자리에 서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습을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도 뛰쳐나가서 서쪽을 바라보는데, 나랑 친구들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서쪽 하늘을 바라본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다.
손가락이 가리킨 서쪽 하늘은 실제로는 서쪽 산이었고, 그 서쪽산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바다 쪽을 보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흡사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예전 티브이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장대비를 맞으며 한참을 서 있자 선생님 몇 분께서는 비를 맞으며 그 여인을 보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우리를 전부 가게 쪽으로 들어가라고 채근을 하시기 시작했고, 우리가 모두 비를 피해 가게 쪽으로 들어서자 몇 분이 산을 올라가셨다.
그동안에도 장대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렸다. 선생님들께서 오르셨던 산은 높지 않은 나지막한 마을 뒷동산으로 중턱엔 공동묘지가 있었고, 언덕 위엔 밭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해서 몇 분이 올라가시고, 얼마 후 상황이 몹시 궁금했던 우리가 다시 해수욕장 한가운데 백사장으로 나갔을 때 우리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귀신처럼 보이는 여인을 사이에 두고도 보이지 않는 듯 두리번거리는 선생님,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그 여인을 보지 못하고 찾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곤 조금 후에 그대로 내려오셨는데, 그때까지도 그 여인은 거기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두 차례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산을 내려오신 선생님들이 곧장 백사장으로 우리에게 나왔을 때, 그 여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라셨는지 다들.
선생님들의 말씀으로는 고구마덩굴인지 말고는 언덕 위의 밭에는 아무것도 없더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다시 가게 쪽으로 몰았고, 비가 그치고 해가 날 때까지 다시는 그 어느 누구도 백사장에 나가진 않았더랬다.
가게들 안쪽에서 비를 피하며 얼마나 있었을까.
해가 나고 다시 날이 맑게 개었다. 우리는 백사장으로 나가서 그 여인이 있던 곳을 보았는데, 언덕 위의 평밭이었던 거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한참 지난 후에는 선생님 두 분이 다시 올라가셨다 오셨다. 그리고 내려오신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은... 다시 올라가 보니 언덕 끝자락에 처음 올라갔을 때엔 볼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덕 끝자락, 그 여자가 서 있었던 곳으로 생각되는 거기에 굵고 노란 오래된 대나무가 하나 꽂혀 있었으며, 그 대나무에는 하얀 천이 수건처럼 감겨 있었다고 하셨다.
그것을 감히 만질 생각은 못하시고, 그냥 보고만 왔다고 하시며.
지금도 동창들이 모여서 술 한 잔 나누다가 이때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묘한 으스스함과 긴장감까지 감돌기도 하는 이야기인데, 그 여인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