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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Jun 27. 2018

난 후회하는 걸까

외국에서 살면 어쩔 수 없이 가끔 억울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레 ‘한국이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비교를 하다 보면 억울함과 분한 감정만 끝없이 생겨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해하고 순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한 날도 그랬다.
뮌헨에 살고 있는 친구가 폴란드로 출장을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즉흥적으로 바르샤바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위해 서둘러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영문도 모른 채 난 그를 따라 공항 보안실로 갔고, 그곳엔 기내에서 언뜻 본 듯한 인도계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내 여권을 들고 가버린 경찰을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탑승객 중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만 골라서 검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제일 먼저 여권을 돌려받으며 미안하다는 사과도 받았고, 지금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 때문에 나름 불만의 표시로 인상만 슬쩍 구긴 채 공항버스를 탔다.

친구와 만난 시간은 이미 너무 늦었고 또 친구도 아침 일찍 미팅이 있다고 해서 우린 방에서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고 곧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가 호텔 커피숍에서 직원과 미팅을 하는 동안 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다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한 번씩 흘깃 쳐다본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달라 보였고 불현듯 얼마 전까지 회사에서 일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처음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 이런 기분이 들었던 건. 물론 일할 때의 기억이 한 번씩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뭔가 허전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은 아니었다.



혹시 지금 나 후회하고 있는 걸까?



전날 밤 공항에서의 유쾌하지 않았던 사건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머물렀던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 때문인지, 아니면 미팅 중이던 그녀에게 겹쳐진 예전 내 모습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물론 언제 그랬냐 는 듯 난 그날 밤 바르샤바의 구시가지에 만연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하지만 지금도 그 여행을 떠올리면 난 외국에 나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를 시샘이라도 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모든 결정과 선택에는 어느 정도의 미련과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 선택으로 얻은 소소한 행복 하나하나도 잃지 말고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또다시 후회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단박에 꺼내어볼 수 있게. 

그리고 내가 포기한 것들에 미련은 생기더라도 그것만 되씹으며 지금 이 순간을 망쳐버리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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