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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Jun 20. 2018

그때 그 선배의 느릿한 존댓말

그 선배는 언제나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한참 후배였던 나에게도 항상 조용하고 느릿한 존댓말로 말을 걸곤 했던 선배. 선배의 그런 말투가 어색해서 괜스레 싱거운 농담이라도 던지면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며 조곤조곤 대답하곤 했다.

오전 11시가 넘어가면 모니터 위에 띄워진 사내 채팅창에서는 점심 메뉴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타자를 치는 손길도 더욱 분주해곤 했다.

특별히 팀 전체가 같이 점심을 먹는 게 아니라면 팀장님과 함께 밥을 먹는 게 불편해서 몇몇 직원들끼리는 몰래 빠져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특히 회식 날이면 비어 있는 팀장님 옆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입구에서부터 늑장을 부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팀장님에게 다가가 점심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사람들이 꺼리는 팀장님 옆자리에 줄곧 앉던 사람은 그 선배였다. 솔직히 그때는 선배가 상사에게 얼마나 잘 보이고 싶으면 저렇게까지 애쓸까 싶어 조금은 밉상이기도 하고 의아해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어느덧 나도 삼십 대가 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 그 선배의 행동은
순전히 사람에 대한
그 선배 나름의 선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뒤편에 앉아 있던 팀장님이나 부장님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일 쏟아지는 업무에 지치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보통의 사람이었을 거다.

얼마 전 무슨 서류를 찾다가 한 편지봉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선배가 선물이라며 준 책 사이에 있던 하늘을 닮은 색상의 편지지. 길지는 않지만 정성스레 한 자씩 꾹꾹 눌러쓴 그 선배의 편지였다.



‘잘할 거예요. 어디서든.......’ 



군더더기 없이 짧은 그 말 한마디가 한 번씩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었는지 아마 그 선배는 모를 것이다.

그 선배의 유난히 예의 바른 존댓말과 따뜻한 마음씨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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