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막연하게 꿈꿔왔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믿기지 않게도 생애 첫 번째 책을 내기로 출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솔직히 처음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고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한껏 들떠 있었다. 마치 이미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것 마냥, 그땐 그랬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어느덧 무더운 6월의 여름, 드디어 기다리던 첫 책이 출간되었다. 되짚어 보면 지난 반년 동안은 딱히 뭔가를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멍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조급한 마음에 손에는 항상 노트를 쥐고 있고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난 한국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늦을까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폐지를 모으는 낡은 수레 옆에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길가에 기대고 앉아 뭔가를 골똘히 하고 있었다. 행여나 할아버지가 민망해하실까 봐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곁눈질로 흘깃 지켜보았다. 그는 무릎에 꾸깃한 신문지를 펼쳐놓고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연필로 옆 화단에 핀 꽃을 그리고 있었다.
한동안 도통 다음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둥 작업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작 펜과 종이는 저만치 내려놓았던, 어느덧 무기력해진 내 생활이 불현듯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처음엔 마음에 드는 펜 하나만 발견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던 내가 끝없는 장비 욕심만 늘어서 이것저것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에 정작 사용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결국 손에 쉬이 잡게 되는 건 문방구에서 산 천 원짜리 얇은 공책과 연필 한 자루였다.
그래, 다시 글을 써야겠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렇게도 원하던 일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느껴지고
생각만큼 일이 풀리지 않아서 지치고
노력한 거에 비해 당장 뭔가 이룬 게 없단 생각에 속상할 때도 있지만
아마도 그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그런 걸 테다.
더 이상 시간이 없네 나에게 핑계 대지 말고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더 잘난 사람과 비교할 시간에
나에게 일어난 이 기적 같은 일들에 항상 감사해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러자.
안녕하세요? 멍작가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올 초에 연재했던 위클리 매거진에 이어서 추가로 지난 6주 동안 써왔던 글들도 어느덧 마지막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신 많은 공감과 댓글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따스한 글들로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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