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친구가 조금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어릴 적부터 십여 년을 허물없이 가깝게 지낸 친구가 요즘 아예 연락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녀의 얘기를 찬찬히 다 듣고 나서 처음엔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볼 만큼 누구보다 친했던 친구가 그럴 리가 있겠냐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통화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딱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 농담에 사람들이 한바탕 웃으며 재밌다고 할 때 옆에서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괜히 다른 화제로 돌리고
누군가 내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참 좋았다는 칭찬을 하는데, 자기도 그 영화를 봤는데 이러이러한 점에서 사실 좋은 영화라고 볼 순 없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재작년인가 한국에 왔을 때 오랜만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앉아 그동안 외국에 살면서 나름 힘들고 서러웠던 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는데 왠지 통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은 이런 일에 그리 개의치 않는다. 나와 관계의 결이 너무 다른 사람에게는 더 이상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는 작은 일 하나에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며 축하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으니깐. 난 그저 진심을 다해 서로를 대하는 그들과의 관계를 단단하게 부여잡으면, 그러면 된 거다.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5526888
교보문고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735215&start=pnaver_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