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도착한 인천공항은 언뜻 미래도시의 한 공간 같았다. 동물검역소 위치를 묻기 위해 아무리 찾아봐도 지나가는 직원 한 명 없이 낯선 안내로봇들만 윙윙 움직이고 있었다. 누리가 보호소에서 곧장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야 하는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3일 동안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연락해온 고마운 분 덕분에 출국 전 누리는 깨끗이 씻고 따듯한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었다. 네모난 캔넬 안에서 잔뜩 불안해 보이는 누리를 두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을 되돌아와 누리에게 괜찮다고 말을 건넸다. 처음으로 난 비행기 안 좁은 좌석에서 맛없는 기내식을 먹으며 나 혼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도착 후 짐을 찾고 나가기 전 공항 경찰들이 내장 칩 및 관련 서류들을 체크했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누리는 12시간 넘게 참았던 볼일을 봤다. 집에 도착하자 한동안 불안한 듯 집 안을 서성이다 슬그머니 냄새를 맡더니 스스로 집 안으로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웠다. 걱정한 것보다 모든 게 비교적 순조롭게 지나가나 싶어 안도하는데 맞은편 테라스 창문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누리가 그때부터 정신없이 짖기 시작했다. 블라인드를 모두 내리고 임시방편으로 창문을 거울로 막았지만 거울 속 본인의 모습에 뭔가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한 누리는 그렇게 밤새도록 짖었고 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저 옆에서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침대 앞에서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고 앉아있는 누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냥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오후 5시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다시 컹컹 짖어댔고 이 상황이 2주 정도 계속 이어졌다. 생전 처음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결심했던 난 3일째 되던 날 테이블에 엎드려 울어버렸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같고 과연 내가 개를 키워도 되는 걸까 생각까지 들며 좌절했다. 그러다 문득 강아지도 사람과 슬픔, 괴로움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고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두리번 누리를 찾았는데 웬걸 저기 바닥에 대자로 뻗어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료 봉지를 집어 들었다.
누리를 입양하고 나서 가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상처가 있는 유기견은 키우기 힘들지 않냐고. 요즘의 난 이렇게 답한다. 일단 한 달만 지내다 보면 되게 단단해진다고, 쉬운 건 아니지만 한 생명에 대한 책임만큼의 무게는 이겨낼 자신이 생겼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