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누리는 낯선 환경 때문인지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집에 엎드려서 눈치만 살폈다.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작은 사이즈로 여러 종류의 사료를 구매했는데 어떤 걸 줘도 입도 대지 않았다. 인터넷을 폭풍 검색한 후 난 이럴 땐 북어나 삶은 고구마, 닭가슴살 이런 음식들을 해 먹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제이미는 개를 키우는 친구로부터 한번 음식을 요리해서 먹이기 시작하면 다신 사료는 거들떠도 안 볼 거란 말을 여러 번 들었다며 한사코 기다려보자고 했다. 참다못한 난 몰래 육포 간식을 물에 불려서 줬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그릇 바닥까지 핥아먹는 것 아닌가. 그 뒤로 더욱더 누리는 사료를 멀리 하기 시작했다...
2.
누리가 오고 나서 난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도 뭔가 먹을 때마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편하게 앉아서 먹지도 못 하고 대충 부엌에 서서 먹기도 하고 아예 냄새가 나지 않는 요거트나 시리얼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열심히 고기를 기름에 볶아서 테이블에 앉아 먹으려고 하면 누리는 삐진 듯 홱 뒤돌아 누웠다. (그 와중에 곁눈질로 한 번씩 날 쳐다보며 확인하는데 그게 또 째려보는 거 같기도 하고) 덕분에 한국에서 엄마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찌워온 살들이 쏙 빠지긴 했지만.
3.
잔뜩 삐졌다고 생각해서 한참 눈치를 보다가 슬쩍 부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흔들며 총총총 뛰어 올 땐 제법 많이 귀엽다.
4.
밖에서는 사람, 개, 심지어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내리다가도 집에 있을 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 용맹한 집 지키는 진도처럼 컹컹 짖어댄다. 아마 밖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같은 개라고 생각 못 할지도 모른다. (개 한 마리 키우고 있어요)
낯선 존재와 살기로 결정하고부터 생각한 것보다 내 삶은 훨씬 더 변화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엔 이 복슬복슬한 존재 때문에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좀 억울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이 소심하고 예민한 개도 만만치 않게 날 배려하고 있다는 거였다. 아침 일찍 이미 잠에서 깼지만 내가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쳐다보며 기다려 줄 줄도 알고 내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면 그제야 꼬리를 사방으로 흔들면서 온다. 낮잠을 자다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와 내 옆으로 오려다가도 내가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으면 내 의자 뒤편에 털썩 누워 한참을 또 기다린다. 어쩌면 개의 하루는 기다림과 기다림, 또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만져달라고 조를 때도 가만히 옆에 앉아 날 올려다보다 한 두 번 다리로 툭툭 건드리는 게 전부다. 그러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터덜터덜 뒤돌아 걸어가는데 그 모습이 또 짠해서 결국 하던 걸 잠시 내려놓고 누리를 부를 수밖에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