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2일의 그림일기
12시쯤 일어났지만 생리통을 핑계로 4시까지 침대에 누워 딩굴딩굴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이대로 일요일을 흘려보내는 게 너무 멍청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불과 베개 커버 그리고 침대에서 함께 지내는 인형 친구들을 죄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청소기도 돌리고 거울도 한 번 닦아주고 나니 봄이 된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서랍 속에 있는 겨울 옷들이 떠올랐다. 정리를 하려면 다 꺼내고 뒤엎어야 하는데, 괜히 일 벌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오늘 아니면 절대 안 할 것 같아서 결국 옷장과 수납장을 뒤집어엎었다.
방바닥에 옷이 산처럼 쌓였다. 아니, 분명히 입을 옷이 1도 없었는데 대체 어디 있다가 나온 건가 싶었고. 물론 이제는 빠이빠이 해야 할 옷들도 꽤 있었다. 내년에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 하고 넣어두어도 절대 안 입을 거 아니까 쿨하게 버리기. 그래도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얼룩이 생겼거나 목이 늘어난 흰 옷들을 보내줄 땐 마음이 조금 아팠다. 이래서 내가 흰 옷은 절대 비싼 걸 안 사는 거야.
한두 시간 정리하다 보니 갑자기 당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 끼도 안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바로 옷 정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배는 딱히 고프진 않고, 당기는 음식도 없고 (식욕이 폭발하거나 아예 없거나. 중간이 없음.) 해서 방울토마토, 청포도, 브로콜리, 바나나 그리고 요거트를 먹었지. 그러고 나서 열심히 일하려면 카페인 먹고 각성해야 돼 하며 커피를 홀짝거리며 거실 소파에 앉았고, 마침 TV에서 부부의 세계 재방송을 하길래 재밌게 봤다. 보면서 문득 내 mbti가 이래서 enfp구나 싶었지. 그래도 재방송 끝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호다닥 치웠다. 정리 다 하고 나니 배고파서 짜파게티를 먹었다. 이제 짜파게티 빌런은 오늘로 끝이야..!
옷 정리하다가 느낀 건, 옷이 많기도 한데 동생이랑 같이 방을 쓰다 보니 수납공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 이래서 다들 드레스룸을 만드는 건가 봐. 자기 전 일기장에 꼭 언젠가 오픈형 드레스룸을 만들고 말 거라는 다짐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