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4일의 그림일기
내가 사는 안양에는 ‘댕리단길’이라는 힙플레이스가 있다. 뭐, 다들 안양 하면 안양일번가나 범계역 정도밖에 모르던데 요즘 뜨는 곳은 댕리단길이랑 동편마을이라구. 아무튼 원래는 ‘대농 단지’라는 주택가였는데, 구석구석에 예쁜 카페나 음식점, 술집들이 생기면서 힙플에만 붙는다는 ‘-리단길’이라는 접미사를 얻었고 그렇게 ‘댕리단길’이 되었다. 물론 가게가 경리단길이나 연남동 정도로 많지는 않아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 사는 친구들을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하긴 했다. 그러다 마침 어젯밤 꿈에서 친구 자먼이와 술을 마셨고 (아니, 얼마나 혼술이 지겨웠으면...) 꿈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급 술 약속을 잡았다. 집 앞에서 버스 한 방이면 오는 자먼이는 흔쾌히 댕리단길로 오겠다고 했다.
1차로 갔던 곳은 태국 음식을 파는 ‘타이 마실’. 태국 음식 진심녀인 자먼의 원픽이었다. 팟타이를 먹을까 하다가 한 번도 안 먹어본 뿌팟 봉커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자먼이 맛있다고 추천하기도 했구. 그리고 텃만꿍 (새우 고로케)와 리오 맥주도 주문했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도 우리 포함 두 테이블뿐이어서 조용히 먹고 즐기기 좋았다. 일단 맥주부터 시원하게 들이켰고, 뿌팟 봉커리는 커리랑 너무 짭조름하게 잘 어울려서 맥주 안주로 너무 안성맞춤이었어. 사실 발라먹기 귀찮아 킹크랩이랑 랍스터, 새우 같은 갑각류 생물 음식 잘 안 먹는 편인데, 뿌팟 봉커리는 게인데도 발라먹을 필요 없이 오독오독 씹어먹을 수 있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보니까 배달도 되던데 다음에 시켜봐야지. 텃만꿍도 안에 새우가 가득 차서 서브 안주로 너무 훌륭했다. 태국 맥주만 2병씩 더 마신 뒤 (취소한 2월 치앙마이 여행에 대한 뒤끝) 자리를 옮겼다.
2차로 갔던 곳은 ‘우화’라는 술집. 가게 이름부터 너무 예쁘지 않나요 ? (ㅠㅠ) 내부 인테리어랑 식기들도 전부 예쁜 데다가 안주까지 맛있어서 저번에 동네 친구들이랑 간 뒤로 내 마음속 원픽 동네 술집으로 저장해두었던 곳. 치킨 가라아게가 정말 맛있었는데. 뿌팟 봉커리와 맥주 콜라보로 배가 빵빵해져서 가볍게(?) 해물 누룽지탕과 진로를 주문했다.
선거 전날이라 정치 얘기부터 사회, 연예까지 온갖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고 진로는 어느덧 4병이 되었다. 신나게 먹고 1시가 넘어서 해산 ! 일단 친구가 우리 동네에 놀러 왔다는 것에서 1차로 신났는데 멋진 곳들만 쏙쏙 골라 데려간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해서 어깨가 정수리까지 올라갔었지. 얼른 친구들을 마음껏 초대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른 친구들한테도 우리 동네 힙플 소개하고 같이 술 먹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