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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Jan 29. 2020

유연하고 탐욕스럽게, 지구제국이 온다

[사피엔스] 다시 읽기: 제국주의에  대하여

한중섭의 [블록체인 제국주의]를 읽으면서 저자가 유발 하라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꼈다. 하여 생각난 김에 3년 전에 읽었던 [사피엔스]를 다시 집어들었다. 유발 하라리의 스토리텔링은 언제 읽어도 매혹적이다. [사피엔스]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사피엔스의 역사는 (가상의) 이야기의 역사이다"가 될 텐데, 유발 하라리만큼 이야기를 잘 엮어내는 사피엔스는 지구 역사에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제국주의 (11,15장)와 자본주의 (10,16장) 파트를 다시 읽었고, 오늘은 제국주의 부분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제국은 탐욕스럽고, 포용적이며, 유연하다.

제국주의는 무엇인가?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특징을 제시한다.


>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런 명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11장)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이 제국의 특징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끊임없이 확장을 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인력과 기술력이 부족하지 않아도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남아서 역사기록에 남는 문화들은 결국 확장에 성공한 제국뿐일 것이다. 탄력성과 유연성은 확장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고.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제국들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북저널리즘>의 이연대 <스리체어스> 대표가 어떤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을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비지니스 모델”이라고 정의했는데, 제국주의의 성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IT 비지니스, 더 넓게는 entrepreneurship의 어떤 부분이 제국주의와 닮아 있는 듯 하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제국의 특징이 인간의 다른 고유한 특징—타인혐오—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 진화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사회적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민족 공포증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국의 이데올로기는] 온 세상이 기본적으로 하나라는 것, 모든 장소와 시대에 적용되는 일군의 원칙들이 있다는 것,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11장)

사피엔스의 역사를 “서로 다른 무리를 통합시키는 세력 (제국주의, 자본주의 등)”과 “통합에 저항하는 세력 (민족주의 등)” 의 대결로 봐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첫번째 세력이 끈기있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



제국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단지 승자일 뿐이다.


제국은 그들이 점령한 곳의 모든 흔적을 지운다. 도시, 언어, 의복, 패배자들이 오랫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들까지. 우리는 [왕좌의 게임]의 '피의 결혼식'을 보고 그 잔인함에 말을 잃지만, 이는 인류의 실제 역사보다 덜 비극적이다: 현실에서 스타크 가문은 복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폐허가 된 윈터펠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로마군에게 패배한 누만시아인들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 누만시아인들이 실제로 남긴 것은 폐허밖에 없다. 심지어 오늘날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오로지 로마인 역사가들 덕분이다. 이야기는 자유를 사랑하는 야만인 소재를 즐기는 로마 청중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다. 로마는 누만시아를 상대로 너무나 완벽한 승리를 거둔 나머지, 패자들의 기억마저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다. (11장)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일본이 일찍 개화하여 1800년 즈음부터 한국을 지배했다면? 한국어는 사라지고, 한복이나 한식 등의 전통들은 사라지거나 “지방의 독특한 풍습” 정도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후손들은 점점 일본을 동경하고 일본문화를 익히려고 했을 것이고.


> 전쟁, 노예화, 국외 추방, 대량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11장)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일본제국이 주도했던 “동양의 근대화”의 세례를 현대의 모든 아시아 국가 (중국도 포함)가 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로부터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 일본제국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잠시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실패한 제국일 뿐이다. 



유럽의 제국들은 “자기객관화”의 사고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등장했던 수많은 제국 가운데에서도, 르네상스 시기 이후 유럽의 제국들은 지금 우리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나를 포함해서, 21세기 세계 인구의 99% 이상은 어느 정도는 유럽 제국의 일원이다. 당시 중국에 한참 못 미치는 기술력으로, 유럽 제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나?


> [1500년에서 1850년 사이 시기] 유럽은 아시아 열강보다 기술, 정치, 군사, 경제의 우위를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독창적 잠재력을 구축했고, 1850년경이 되자 그 중요성은 갑자기 뚜렷해졌다….. 근대 초기에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보완적인 두 가지 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15장)


그리고 그 뒤에 깔려 있는 중요한 사고방식은 바로 “무지에 대한 인정”이다.


> 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15장)


14세기까지 그렸던 세계지도에는 빈 공간이 하나도 없었는데, 15세기부터 유럽에서 그린 세계지도에는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인상적이다! “나는 모른다”라는 생각은 곧 “자기객관화”이다. 자신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타자와 비슷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함은, 그곳에서부터 변화하고 진보해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제국주의의 탐욕성과 매우 궁합이 잘 맞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제국은 “모든 것이 하나”라는 깊은 뿌리가 있다.

중국 제국이 뿌리를 두는 사상은 ‘끊임없는 진보’보다 ‘평화로운 질서’에 더 가깝다. 


> … 중국의 정치사상에서나 역사기록에서나 황제의 시기는 질서와 정의를 갖춘 황금시대로 평가된다. 현대의 서구적 시각에서 공정한 세계는 서로 독립된 국민국가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중국에서 정치적 분열의 시대는 혼란과 불공정으로 얼룩진 암흑시대로 비쳤다. 이런 인식은 중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하나의 제국이 붕괴하면, 지배적인 정치이론은 언제나 권력자들에게 하찮은 독립군주에 안주하지 말고 중국의 재통일을 시도해야 한다고 들들 볶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이르든 늦든 늘 성공했다. (11장)


이 사상은 19세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서구문화를 배워 자기식대로 결합한 21세기에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이 오고 있다.

제국주의의 강력한 힘은 마침내 지구 전체를 단일문화권으로 만들었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에 진정한 의미의 지구제국이 등장할 것이라 예측한다.


>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세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제국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바치며 남아 있을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을 선택하고 있다. (11장)

3년전과 마찬가지로 이 대목에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성적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저항심이 올라온다. 내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증거이겠지. 이 애착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그런데 이 ‘지구제국’ 하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한국의 언어는 살아남게 될까? 이미 한국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이 거대 인터넷 기업의 정책에 따라 좌우된다. 한국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 줄어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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