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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월 Nov 26. 2017

가볍게 쓰는 연습

가볍게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에다가 이런 저런 의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또 언젠가부터는 내 것을 누군가에게 내어 보이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꼬이고, 엉켜서 무거워졌다.

쓰다 말기를 반복했다.


내 일상은 단조롭기만 하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내  가족들보다 열다섯시간 늦게 시작한 휴일이었다.

며칠 전에 눈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에 가족이 모두 모여 김장을 했다는 연락도 받았다. 김장 후에 가족 모두가 한 숨씩 잤다는 연락도 받았다. 이 곳의 날씨는 어떻냐는 질문도 받았다. 초겨울 아침 같은 날씨가 며칠이나 이어졌었노라고 대답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을 뜨기도 전이다. 얇은 문풍지 사이로 푸른 빛이 새어들기 시작했을 때,  일상을 벌써 시작하고 있었던 할머니가 마루를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몇시야? 문을 밀어 열면 서리가 가시지 않은 겨울 아침 풍경이 펼쳐지는데, 넓은 흙 마당에 개들이 짖고, 할머니는 사과며, 전이며 내어놓기 시작한다. 일어나! 상차려야지!  응. 눈부비고 찬물로 세수하면 그제서야 겨울 아침날씨가 실감난다. 설날이다. 설날 아침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떡국도, 세뱃돈도 아니다. 그것 모두가 끝난 후 가족 모두가 다시 한숨씩 잠을 자는 것이다.


엄마, 이런 날씨가 며칠이나 이어졌었어. 오늘은 해가 났네. 토요일이니까 쓰레기를 버려야 해, 설거지도 하고 밥도 먹어야지, 일곱시네! 거긴 몇시야? 오후 열시. 한 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열시네. 나는 여기서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늦잠을 잔 기분이 들어. 아빠, 잘 지내고 있어. 아빠는? 쌍꺼풀은? 예뻐졌어? 엄마도 안한 수술을 아빠가 먼저 하면 어쩌자는거야. 아빠랑 닮은건 눈 뿐이었는데, 이제 누구딸이냐는 소리 실컷 듣게 생겼네. 아빠 밥먹을래, 얼른 다시 자.


오늘은 해가 났다. 여덟시 부터 옷을 챙겨입고, 커피집이 문을 열 9시를 기다렸다. 냉장고에 쟁여둔 삶은 계란에 케챱을 발라먹었다. 닭가슴살에 바베큐 소스도 발라 먹었다. 얼려둔 빵에 파인애플 잼도 발라 먹었다. 다 발라먹은 후에 20렘삐라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길을 나섰다. 커피를 마시면 다른 사람들 보다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체질 때문에 피하고만 있었는데, 이 곳 커피는 그것을 무시하게 할 만큼 맛있어서 몸을 적응시키기로 했다. 주구 장창 마시는거다. 이렇게도 마시고 저렇게도 마시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기로 한다. 제 아무리 오지 않는 잠이라도 언젠가는 오게 되어있다. 내가 이기는 게임이다.  아침 커피. 쉽지 않아.


고민이나 질문이나 일상을 가장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게 누구라도 그에게 나불대는 것이 내 습관이다. 이 곳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얘기하고 한 번 털어내면 간단해질 일들이 이 곳에서는 수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의미가 붙고, 꼬이고, 엉켜 무겁게 한다. 어쨌거나 이 일상도 끝이 있고, 끝이 있는 것은 초조함과 나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지라 사람 참 헷갈리게 한다. 빨리 지나가라, 아니 조금만 더. 아니 얼른 끝났으면, 아니 조금만 더. 어쨌거나 무엇 하나도 쉽지 않은 일상의 끝에 주어질 낮잠시간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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