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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월 Jan 08. 2017

보름의 글



여자는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늘 낡은 옷을 입고 지저분한 신발을 신었다. 다 늘어나 끊어지려는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코팅이 듬성듬성 벗겨진 안경을 썼다. 떡진 머리, 세수는 했는지 모를 지저분한 얼굴, 멍한 눈빛으로 두 볼에는 바람을 넣고 다녔다. 어깨가 반으로 접힐 듯이 한 껏 움츠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것 처럼 어그적 어그적, 누구와도 스치지 않고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아무도 모르는 여자에게는 남들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당신들은 모르는 무언가가.

달의 한 찰나에서 빌려온 이름을 가진 여자는 달이 뜨는 밤에 좀비처럼 일어난다.  굴 속 같은 방에서 모니터 불빛을 의지하여 빗소리를 듣는다. 여자는 굴 속에서 달이 넘어갈 때 까지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다가 해가 넘어오기 시작하면 다시 낡은 운동화를 끌고 눈꼽을 겨우 떼며 나가서는 잠시 골목길을 돌아다닌 후 김밥을 가지고 굴 속으로 돌어와 사온 김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여자의 등에 자신의 등을 기대고 누운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고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여자는 글을 쓴다. 그렇게 쓴 글들은 모두 시덥잖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고 적어내린다.

당신은 모른다. 여자가 왜 글을 쓰는지. 마침 궁금해진 당신은 묻겠지. '여자, 너는 왜 글을 쓰는가.' 그럼 여자는 '나도 몰라.' 라는 대답을 던지고는 배시시 웃어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자는 다시 굴 속으로 들어와 생각할 것이다. 글. 글. 글. 글. 글. 당신이 물었다. 글을 왜 쓰느냐고.

유독 자신을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많은 이 여자가 세상에 일방적으로 던져대는 것. 나 여기 있다고. 그게 바로 여자의 글이려나. 그 여자는 눈꼽도 떼지 않고 글을 써. 여자는 말이 없고 생각은 많고 정리를 잘 할 줄 모르고 그리운게 많고 두려움이 큰 겁쟁이. 여자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지. 찰나에서 온 이름을 가진 여자는 영원처럼 착각하게 하는 눈과 말의 속임수를 믿지 않아. 어느 한 순간이 지나면 이지러져버릴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여자는 글을 쓸지도 몰라. 진짜 찰나를 붙잡고는 놓지 않는 글을. 영원하고 정직한. 애초에 없었던 것 처럼 휴지통에 처박을 수 있는.

그런 여자도 어쩌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의자에 앉아 두 어깨를 테이블에 맞추고는 분명 졸립다고 할거야. 당신이 건넨 말을 하나도 듣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도 잊지 않아. 여자는 사실 말을 하고 싶었을거야. 사랑스러운 눈을 당신의 눈에 맞추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당신의 귓가에. 그렇지만 여자의 멍한 눈과 멍한 목소리는 무언가를 전할 방법을 몰라 천장과 바닥을 헤매지. 찰나는 빠르고 여자는 느려. 그래서 그 여자는 말 대신 글을 써. 당신과 닿기 위해. 가장 여자다운 모습으로.  

혹시 여자의 글을 읽게 된다면 생각해주길. 여자가 당신을 만나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눈꼽도 떼지 않고 적어 내려간 이 글에 숨겨진 사랑스러움은 무엇인지. 당신에게 건네고 싶었던 목소리는 무엇이었는지. 어딘가에 숨어있을 여자의 찰나는 무엇이었는지. 그러고는 당신이 숨겨진 것을 알아챈다면 다시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질 테지만. 보름의 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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