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밀려드는 감정 속에서 적어내려간 이야기
안녕, 잘 지내고 있어? 이렇게 인사도 오랜만이네. 늘 애정 담긴 인사로 먼저 시작했는데 이젠 더이상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목이 천천히 잠기는 기분이야.
나는 너에게 말했던 대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왔어. 너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보란듯이 보여주고 싶었고, 그 곳을 벗어나면 언제든 볼 수 있단 기대감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며 도망쳐왔어. 그런데 아직 정리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온 이 곳에서도 너가 곳곳에서 존재를 보여주더라.
여기서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이거 정말 좋아했겠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짜증을 냈을까? 하는 그런 이런저런 가정들과 상상으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 그 상상 속에서 우린 정말 행복했고 행복했던 상상만큼 너가 존재하지 않는 내 현실은 조금 더 씁쓸하더라.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런지 시간은 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기분이야.
너와 함께한 게 시간만큼 난 널 그리워하고 있어. 참 웃기지? 나도 내가 이렇게 꾸준히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어. 그래도 난 사실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종종 많이 주어진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좀 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의 나의 삶의 방향성과 자신감도 갖게 되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구체화하게 되며 내가 바라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들도 많이 고민했어. 그래서 난 내가 정말 이전보다 더 후회없이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 삶에 너가 있다면 훨씬 행복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나가는 가족들을 보며 나에게 수줍고도 진심을 담아 조심스레 얘기하는 너의 모습과 같이 꾸려나갈 매일 상상했던 우리가 만들 가족들도 함께 떠올리게 되더라. 결국 우리는 행복이라는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는데도. 너가 나에게 다가와준 그 순간부터 너무 큰 행복을 한 번에 가졌다보니 이걸 잃어버리고 나서도 그 행복의 맛을 잊지 못하고 꾸준히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해.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우리가 보내왔던 시간들을 천천히 하나씩 되짚어 보곤 해. 그러면서 어쩌면 난 너에게 처음부터 나를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짐과 부담을 너에게 안겨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게 참 아쉬워. 그럼에도 그 때의 나의 최선이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했기에 지금에서야 돌아볼 수 있는 거겠지. 다음의 나는 이런 아쉬움을 발판 삼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매일 나아가고 있는 지금을 너와 함께한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난 정말 널 많이 사랑했구나 싶어.
본디 이름보단 애칭이 훨씬 익숙했었는데 함께했던 시간만큼 널 생각하는 동안 이젠 너의 이름이 나에게 더 익숙해진 것을 보면 헤어진 이후에 너를 얼마나 불렀는지, 얼마나 많은 말을 너에게 마음 속으로 전했는지가 느껴지는 기분이라 스스로 어이없기도, 참 나도 나다 싶어.
혼자 있는 시간보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에 네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어.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마 지칠 것 같아 속으로 꾹 눌러 삼키다 점점 벅차오는 이 감정에 생각을 정리하고 그저 온전히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다시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을 찾게 되네.
난 언제쯤 완벽히 널 나에게서 떠나 보낼 수 있을까?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끊어져야 난 너를 더이상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따금 이런 감정이 차오를 때마다 먼저 다가가볼까란 생각도 들다가 거절 받아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서 인지, 변한 너의 모습에 간직했던 내 모든 감정들이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어 인지, 아니면 그 끝은 지금보다 더 불행할 내 모습을 마주하기 무서워서 인지. 결국엔 무서운 것 같아. 그저 너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주길 기다리는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우리의 끝을 생각하면 다시금 내가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아닌 먼저 잡아주는 것만이 답이라고 느껴져서 인 것 같아. 이걸 아직도 기대하는 나를 보며 지난 시간동안 나에게도 너에게도 화가 나기도 했고 멍청하다 느끼기도, 무력감도 포기도 온갖 감정들을 다 마주했었지.
너는 내가 너무 쉽게 너의 손을 놓아 그것에 실망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난 나의 최선이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 그 최선은 아직도 다하고 있어. 이런 나를 내 주변에선 다그칠 것이 뻔하기에 꾹 눌러 삼켜. 그러다 보면 이 감정들은 내 마음 속에 소용돌이처럼 갑자기 확 몰아치며 나의 다른 감정들을 가득 삼키다가 다시 고요해지기를 반복해.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다독이며. 내가 언젠가 정말 너의 행복만을 바래줄 수 있을 때 그 때 너를 완전히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막연한 생각만 하는 나날이야.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의 미래를 너무 구체적으로 많이 그려서인지 아직도 너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기분이야. 옅게나마 이어져 있는 느낌에 이렇게 그리워 하는 거겠지. 아예 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마음 가득히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 때야 난 너와의 인연이 완전히 끝났구나를 실감할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 시간이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 그 때까진 하루하루 나의 감정들에 충실하며 살아볼게. 종종 많이 웃고 꽤 많이 공허해 하며.
나도 내가 신기할 만큼 잊지 못할 정도로 너라는 사람 그 자체를 가득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줘서, 누군가를 온전히 마음에 품어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너에게 보내지 못 할 편지지만 마음 가득히 담아 너에게 보낼게.
잘 지내고 늘 건강하게 행복해야해. 안녕, 정말 커다란 행복을 나에게 선물해준 소중한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