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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걸으며

12.7.21 화

by 류재숙 Monica Shim

새벽 미사에 왔습니다. 참 오랜만에 이렇게 새벽 여명 속을 달려 미사에 왔어요. 그동안 새벽 미사가 없다가 새신부님이 오시며 생겼습니다. 신부님이 일주일 중 단 하루 쉬는 날인데 신자들을 위해 새벽 미사를 열어주었습니다. 신부님의 정성에 새벽 미사에 꼭 오고 싶었지요. 이른 시각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었습니다.

새벽 공기는 오래간만에 내리는 가랑비로 습기를 머금어 폐 속으로 편안히 들어옵니다. 풀냄새도 짙게 콧속으로 스며듭니다. "당신 만나러 가는 길이 이리 기쁘니 내 어찌 마다하리오"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신부님은 성체 예식을 거룩하게 모십니다. 유아세례 받고 지금까지 이렇게 성체 예식을 진지하게 행한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저 몸이 우리를 살리셨구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왜 이제야 가슴으로 오는지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기까지 50여 년이 걸리다니요.

성체조배실에 들르니 신부님도 조배를 하십니다. 하느님을 자주 만날수록 나는 낮아지고 낮아져 엎드리게 됩니다.

미사 후 공원을 걸었습니다. 공원길에서 매일 만나던 굽은 나무에 '주의'라고 쓰인 노란 테이프가 둘러져 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공원길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는데 바람에 굽은 허리 때문에 잘려 나가게 되나 봅니다.

봉사를 하며 누군가 뒷말을 하면 서운했던 적이 있습니다. 해온 일을 알아주길 마음속으로 원했던 건지 모릅니다. 공원을 오래도록 지키며 그늘을 만들어 주던 이 나무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해도 아무 말없이 사라질 겁니다.

어릴 때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납니다. 나무처럼 예수님처럼 나도 묵묵히 아낌없이 섬기다 조용히 떠나게 해 주십사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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