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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Aug 30. 2024

6. 삶과 죽음, 불과 얼음의 공존 청의호수,흰수염폭포

홋카이도 day2

  흰수염 폭포를 보러 시로가네 온천마을의 철제 다리 위로 갔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옆이라 걸어서 갈 수 있어 좋았다. 바위 절벽의 갈라진 틈새에서 가늘게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하얀 수염을 닮았다해서 흰수염 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폭포 바로 위에 시로가네 온천이 있어 온천물이 함께 흘러내리는 덕에 영하 20도가 되는 비에이의 한겨울에도 폭포는 얼지 않고 흐른다. 그러나 뜨거운 온천물도 비에이의 혹독한 냉기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찬공기에 붙잡혀 곳곳이 고드름으로 달려있다. 거대한 고드름의 군상은 파이프 오르간이 되어 겨울 소나타를 연주한다.


 푸른 온천물이 흐르는 강엔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절벽은 흐르는 물과 고드름과 흰눈 장식이, 언덕위엔 하얗게 얼어버린 나무가 상고대가 되어 장관을 이룬다. 뜨거움은 차가움을 녹이고 차가움은 뜨거움을 얼리는 힘겨루기를 하면서 푸른물은 폭포로 쏟아지며 강을 따라 흐른다. 강위에 눈을 소복이 뒤집어 쓴 바위가 하얀 토끼 같기도 해서 토끼가 온천욕을 하고 있는 듯하다.

 

  멀지않은 눈산에 뭉게뭉게 연기가 솟는다. 활화산이란다. 활화산을 코앞에 두고 있다니 당장 터질것도 아닌데 갑자기 긴장되었다. 두 대륙판이 마주하는 불의 고리에 와 있음이다. 차가운 눈산과 뜨거운 활화산의 연기, 뜨거운 온천수와 얼음으로 덮인 폭포, 뜨거움과 차가움,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이 땅에서 꿈틀대며 살아있는 지구를 느낀다.



 

 청의 호수(Blue Pond)를 찾은 시각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해가 진 후였다. 눈발이 제법 흩날리고 있었다. 호수를 향해 올라가는 입구는 제법 경사진 언덕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급격히 내려간 기온으로 길은 얼어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삼각대를 지팡이 삼아 조심조심 올라야했다. 언덕 위에 오르자 나무기둥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깊은 웅덩이가 보였다.


 청의 호수는 이름 그대로 물빛이 푸른 호수다. 이번 여행을 오기전 자료를 찾다 발견한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푸른 호수 안에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가 함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죽음과 삶이 푸른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신비스런 광경이 이 세상 풍경같지 않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1988년 토카치다케화산 분화를 막으려는 주민들이 제방을 쌓았는데 호수 상류의 시로가네 온천수의 알루미늄이 함유된 물이 섞여 콜로이드질이란 입자가 만들어져 태양광에 반사되면서 호수는 코발트블루빛으로 빛난다. 계절이나 시간, 날씨에 따라 호수의 물색이 달라보인다고 한다. 투명한 호수에 가을단풍이 비칠 때나 흰눈과 함께 겨울나무가 푸른 호수에 반영되는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1998년 사진작가 다카하시 마유미가 촬영해 알려진 후 입소문을 타고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푸른 호수를 기대했는데 꽁꽁 얼어버린 호수 위로 흰눈이 쌓여 호수가 아닌 들판에 나무둥치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말뚝을 박아 놓은 것 같은 수십개의 흰나무 기둥들이 어둠 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 장승들이 노려보는 듯 괴기스런 분위기에 마치 공동묘지에라도 온듯 섬뜩했다. 잎새를 모두 떨군 앙상한 나무들은 어떤 게 산 나무인지 어떤 게 죽은 나무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삶과 죽음이 뒤섞여 공존하는 공간은 살아있어도 죽은 듯 죽어도 살아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둠에다 추위까지 겹쳐 카메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손전등과 헤드라이트를 가져갔음에도 호수를 비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장갑을 벗는 순간 손이 얼어버릴 것 같아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노출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카메라의 플래쉬를 터뜨려 찍기에는 모델이 된 나무들이 멀고 전체를 담기엔 비추는 조명이 약하다. 카메라의 노출 시간을 길게하니 조명이 비친 쪽으로 눈발이 사선을 그으며 빗줄기처럼 찍혔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엔 빛이 턱없이 부족하다.


 곧이어 색색의 조명이 호수를 비추며 마법의 밤이 펼쳐졌다. 조명색에 따라 신비스런 보라의 호수가 되었다가 초록의 여름 호수가 되었다가 검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선 죽음의 호수가 되기도 했다. 슬프도록 푸른 호수가 되었다가 밝은 희망의 호수가 되었다. 현실과 비현실적인 풍경이 조명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호수 위로 펑펑 내리는 눈, 그 속에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나무가 함께 호수에 잠겨 삶과 죽음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삶만이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삶과 죽음은 이렇게 나란히 함께 가는 것임을 청의 호수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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