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Day2
눈과 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풍경사진 작가 신조 마에다의 갤러리 탁신관(타쿠신칸)을 찾았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갤러리는 아직 개관 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탁신관 건물 뒤 자작나무 숲을 걸었다. 눈 쌓인 오솔길을 따라 잎 떨군 자작나무들이 하늘높이 뻗어 있었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니 절로 고개가 하늘로 치솟아 내 키가 한뼘은 커지는 것 같았다.
자작나무는 나무의 껍질을 태울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나는 데서 이름 지어졌다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화촉을 밝힌다고 하는데 그 화촉(樺燭)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이다. 자작나무 껍질에 기름이 많아 불이 잘 지펴지는데 옛날 불이 없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결혼 때 불을 밝혔다 한다. 또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썼고 재질이 단단해 가구로도 만든다 하니 쓰임새가 많은 나무다.
눈 쌓인 숲길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어디선가 딱따닥 딱따다닥 나무 패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딱다구리가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다.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 조심조심 다가가니 어느새 눈치를 채고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그의 작업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나무사이로 햇살이 몸을 부비며 파고들었다. 둥글게 난 오솔길을 따라 한바퀴 걷고오니 개관시간이 되었다.
신조 마에다는 홋카이도의 자연경관을 테마로 삼아 홋카이도의 자연미를 보여준 작가이다. 일본에서
46권의 사진집을 출간하였으며 1987년에 홋카이도의 비에이에 탕케이 포토 에이전시 회사를 건립하였다. 홋카이도 비에이와 후라노 언덕 풍경에 심취해 30여년간 이곳에서 사진 촬영을 하였다. 홋카이도의 사계절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그림엽서와 포스터로도 제작되었고, 비에이 전원마을 풍경은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 등 촬영지로 각광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탁신관은 폐교된 옛 치요다 소학교 자리를 이용해 1987년 문을 열어 많은 사진 애호가들에게 명소가 되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갤러리로 들어섰다. 갤러리에 신을 벗고 들어서는 것도 이채롭다. 반질반질한 마루바닥이 학창시절 교실 마루를 연상케 했다. 청소시간에 친구들과 엎드려 마루에 초를 문질러가며 걸레질을 하던 때가 떠올라 잠시 입구 마루에 걸터 앉았다. 마루에 올라서자 벽에 걸린 강렬한 색감의 사진이 시선을 압도했다. 지금이야 포토샵이 발달되 사진에 내맘대로 색을 넣기도 하고 찍힌 피사체를 지워버릴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당시엔 필름으로 찍어 현상했을텐데 마치 포토샵을 한 것 같은 컬러와 구도가 대담하다.
1층에 봄, 여름, 가을 풍경부터 2층으로 겨울 풍경 작품이 이어졌다. 홋카이도의 사계절을 따뜻한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순수한 자연의 민낯과 언덕을 물들인 화려한 색채는 마치 그가 경치를 마주한 순간에 내가 함께 서있는 것처럼 풍경 안에 녹아들게 했다. 미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그의 사진집 또한 친절히 전시되어 한동안 사진 감상에 빠졌다. 그의 사진의 일부는 과도한 색체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염색과 직물을 공부한 그의 경력을 보았을 때 색에 대한 집착이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촬영했던 마일드세븐 언덕을 찍은 그의 작품은 빛이 눈 언덕을 비춰 만들어내는 음영과 눈의 질감이 잘 표현되어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는 풍경사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라는데 몇년째 사진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무엇을 카메라에 담고 어떤 색깔의 사진을 만들어 내고 싶은지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가장 어려운 숙제다.
고흐가 살고 그렸던 아를과 오봐르 쉬와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배경지 니가타 등 한 예술가의 작품이 그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홋카이도 특히 이곳 비에이와 푸라노도 신조 마에다에 의해 특별한 도시가 되어 사람들을 부른다. 예술이 도시 발전과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술가를 초대하고 그 지역에 머물게 함으로써 도시는 영원히 기억되는 곳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국의 지방자치에서도 큰돈 들여 관광시설을 지을게 아니라 예술의 힘에 대해 깊이 고려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