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day4 2024.2.26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파크호텔 식당으로 노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휠체어를 탄 노인, 간병인과 함께 온 노인, 친구들과 온 노인, 노인왕국이다. 온천을 찾은 노인들로 식당은 삽시간에 가득 찼다. 창밖으론 어제저녁부터 내리던 눈이 아침까지 이어져 내리고 있었다. 호텔 입구 큰 나무 아래로 두 남자가 눈을 머리에 쓰고 걸어온다. 호텔 뒤로 비에이 다께(악-바위) 산이 높이 솟아있다. 큰 창으로 내다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얗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고 노래하던 시인 백석이 떠오른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어지러운 세상으로 그의 마음으로 푹푹 쌓이던 눈. 세상은 가끔 이렇게 눈으로 덮어가며 살아야 살아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료칸에 따로 묵은 선배 덕분에 비에이 료칸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작은 료칸은 눈으로 덮여 입구로 난 길만 겨우 보였다. 아침 일찍 마당의 눈을 치우느라 애쓴 커다란 눈삽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쉬고 있었다. 목재로 지어진 료칸 안은 정갈했다. 나무 마루의 긴 복도를 따라가니 작은 다다미방들이 나오고 창문마다 눈을 머리에 인 정원수가 보였다. 방마다 온천탕이 있다 했다. 오래되어 여기저기 삐걱대는 마루와 눈으로 싸인 야외 온천탕을 기대했었는데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오늘은 산맥을 넘어 홋카이도의 북쪽 카와유온천지역으로 간다. 가늘게 내리던 눈은 큰 송이로 바뀌며 본격적으로 내릴 태세다. 겨울 들판으로 눈이 쌓인다. 눈안개로 세상은 베일을 덮어쓴 듯 신비롭다. 이따금 스쳐 지나는 트럭이 눈을 잔뜩 흩뿌려 차창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러 용각산사탕 아이스크림 반건조오징어와 커피를 샀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고 선전하던 용각산 분말이 사탕 형태로 나와 있었다. 병으로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가 분말을 삼킬 때마다 기침을 하셨는데 이젠 사탕으로 나오니 먹기가 편해졌다. 선배는 장갑 한쪽을 잃어버렸다며 새장갑을 샀다. 장갑 손가락에 구멍이 있어 불량품인가 했는데 일부러 엄지와 검지를 뚫어 놓은 거였다. 카메라 촬영할 때 딱이라며 신나 했다. 만 원짜리의 행복을 샀다.
다이세츠잔(대설산)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바위절벽이 예사롭지 않다. 바위로 타고 내리던 물이 얼어붙어 거대한 고드름이 되었다. 2290미터의 아사히다케산이 이곳에 있다. 소운쿄 온천지역엔 빙폭마츠리 얼음축제가 열린 후라 계곡 아래에 거대한 얼음 구조물이 남아있었다. 축제가 끝나 얼음 조각에 물을 뿌려 본래의 모습은 없었지만 그 물이 얼어 또 다른 작품이 되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10일 전에 삿포로 얼음축제가 열려 아슬하게 일정이 빗나가 아쉬웠었는데 이나마도 보아 다행이었다.
거대한 빙벽폭포가 나타났다. 은하폭포다.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떠올리게 했다. 줄기차게 내리 달리던 물이 꼼짝없이 얼음땡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 위를 두 사람이 까마득히 빙벽을 타고 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 같은 이 날씨에 저들은 어찌 저리 용감할까. 쳐다만 봐도 아찔한 높이의 얼음 폭포 위를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두 사람은 마침내 저 끝을 올라 은하철도에 탑승하려나.
폭포아래 계곡은 온천 지역이라 혹한의 날씨에도 얼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개울 위 바위들이 눈모자를 소복이 쓰고 온천욕을 하고 있다. 수건을 가지런히 네모로 접어 머리 위에 얹고 온천욕을 즐기던 일본 여인네들과 닮았다. 휘날리는 눈송이들이 하늘로부터의 긴 여정의 피로를 풀려 온천물로 뛰어든다. 산맥을 넘기 전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할까 하고 둘러보니 식당마다 문을 닫고 라멘집 하나만 달랑 열려 있다. 어쩔 수 없이 산을 넘어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소운쿄를 떠났다.
소운쿄에서 키타미로 넘어가는 높은 고갯길을 눈폭풍 속에서 39번 국도를 따라 갔다. 휘날리는 눈과 안개로 시계가 거의 제로 상태다. 이렇게 눈안개 자욱한 길에선 화이트아웃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눈 표면에 가스나 안개가 생기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 원근감이나 공간감각이 없어져 가까운 주변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야상실 현상이란다. 해발 천 미터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라 잔뜩 긴장되었다. 헤어핀코스라 불리는 내리막길 U자형 커브길에는 도로의 결빙방지를 위해 길바닥에 열선이 깔려있었다. 붉은 막대를 가로등처럼 설치해 폭설로 길 경계가 구분이 안될 때 지표가 되게 한다했다. 안전을 위해 만반의 대비를 해두었으나 눈폭풍 속을 달리긴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험한 북해도의 간선도로는 아바시리 형무소 죄수들이 닦았다 한다. 아바시리 형무소는 홋카이도에서도 최북단 혹한지역에 세워진 일본에서 가장 험악하기로 유명한 탈옥 불가능한 감옥이었다. 일본판 알카트라즈 형무소인 셈인데 흉악범과 정치범들이 많이 수용되었다한다. 이 험악한 형무소에서 네 번이나 탈출에 성공한 죄수가 있었다는데 탈옥왕 요시에 시라토리였다. 매일 제공되는 된장국으로 감옥 쇠파이프를 부식시켜 탈출했다 한다. 현재는 감옥 박물관이 되어있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설국의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송이들이 차창으로 수없이 달려와 부딪쳤다. 스러져가는 눈송이들과 험한 공사에 동원되었을 그들이 오버랩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대형트럭이 눈길에 빠져있었다. 이런 눈폭풍에 갇히다니 난감하다. 거대한 크레인이 와야 구조될 거란다. 차안에 갇힌 운전사가 염려되어 지나치는 내내 뒤돌아보게 했다. 눈보라를 뚫고 산맥을 넘고 나니 직접 운전한 것도 아닌데 피로가 몰려와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 30분 거리에 러시아로 이어지는 오호츠크해가 있다. 일본의 북쪽 끝자락에 거의 온 것이다. 동계 올림픽 때 "영미 영미" 하고 부르던 컬링의 본고장인 키타미가 가깝다. 키타미시내 버스가 텅빈 채 지나갔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데도 동네집들이 예상외로 뾰족지붕이 아니다.
눈산을 긴장해 넘어오느라 시장기가 더했다.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찾았다. 입구에 너핸이란 천을 걸어두면 식당이 열린 것이란다. 멀리서도 오픈여부를 알 수 있어 좋다만 둘러봐도 이런 날씨에 너핸이 걸린 곳이 없다. 눈은 끊임없이 내리고 주위는 눈안개로 가득하고 먹을 곳은 없고 난감했다. 다행히 도로가에 야마젠 소바 식당이라 간판이 걸린 소바집을 발견했다.
작은 식당에 들어서니 손님 하나 없이 조용하다. 혼자 운영하는지 주방에 있는 아줌마 외엔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벽엔 신영균과 문희를 닮은 배우가 그려진 오래된 영화포스트가 걸려있었다. 특이하게도 식탁 위에 검은 바위와 자갈로 일본정원을 꾸며 놓았다. 실내가 정갈하다. 큰 기대없이 냄비우동과 냄비소바를 시켰는데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 나와 놀랐다. 뜨거운 쇠솥에 담겨 나온 우동은 인절미 야채 오뎅 표고 계란말이인 다마고마끼, 김과 파까지 올려져 고명이 화려했다. 깊은 맛이 나는 육수도 제대로다. 이렇게 외진 곳의 작은 식당에서 이런 맛을 내다니 놀라웠다. "고찌소사마(잘 먹겠습니다)"가 절로 나왔다. 주방까지 가서 주인장에게 정성 어린 음식에 감사인사를 하니 환히 웃는다. 나오다 보니 벽에 표창장과 감사패가 걸려있다. 어쩐지 남다르다 했는데 역시나 장인정신이 담긴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고찌소사마는 한자어로 열심히 뛰어다닌다는 의미란다. 손님 접대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정성을 다한 주인장에게 하는 참으로 적절한 인사말이다. 돈을 내고 먹은 음식이지만 깊은 정성을 먹고 나온 것 같아 든든했다.
메르핸노오까에 잠시 차를 세워 촬영을 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들판으로 나무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대공팔경' 북해도의 팔경 중 하나란 팻말이 서 있었다. 눈을 흩뿌리며 달리는 큰길 가에서 빨강 우산을 들고 걸어보라는 선배들 요청으로 모델이 되었다. 우산을 이렇게 써라 뒤돌아보지 마라 주문이 많았지만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깔깔대며 사진을 찍은 기억에 오래 남을 촬영지였다.
아침 9시에 출발해 오후 4시경에야 카와유온센지역의 호텔에 도착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눈폭풍을 뚫고 험한 산맥을 넘어 온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