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는다
그의 눈매는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등 뒤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들과 현란한 그림들과 병풍처럼 둘러진 쌀가마니들이 마치 그가 모신 신께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극에서나 보던 대감마님 복장을 하고 나를 노려보듯 하는 그 앞에서 나는 죄를 짓고 끌려온 삼월이 같았다.
식은땀이 났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서웠다.
이미 혼자 이 먼 길을 기차 타고 택시 타고 찾아와 그 장소에 도달한 것으로도 나는 지쳤다.
그의 짧은 질문들과 나의 대답들 뒤로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그는 여러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로 시작해서 이듬해까지는 해외여행이나 비행기 타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로 마무리되었다.
겨우 질문을 했다.
해외여행은 왜 안된다는 거죠?
죽어, 네 남편 죽어, 그니까 비행기 타면 안 되는 거야,
명심해.
돈을 치르고 ,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에 돌아와서 며칠을 끙끙 앓았다.
그리고 나는 신문에 났던 다른 무속인을 또 찾았다.
병이 위중할수록 한 의사의 소견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른 의사를 찾아가는 심정으로 그렇게 여러 철학관과 유명한 무속인들을 찾아다녔다. 비교해봐야 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말하는 거라면 확률적으로도 신빙성이 높아지는 거니까.
나는 녹음도 하고 노트를 준비해서 다녀오면 꼼꼼히
적었다. 그리고 그들의 설명과 조언을 비교하여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공통점은 그랬다.
애아빠는 평생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작게, 많으면 많은 대로 크게.
그리고 한결같이 그들은 나에게 애를 시댁에 주고 이혼하라 했다. 이렇게 살다 간 제 명대로 못 살 것이고, 애는 누가 키워도 잘 클 운명이라며. 다 크면 엄마 찾아올 테니 내 행복을 찾으라 했다.
나는 물었다.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인생이란 남들과 관계로 엮여 가는 것인데 행여 그의 타고난 운명이라도 다른 인생의 영향으로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인간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은 신의 마음도 돌린다고 하지 않던가.
“하면” …“된다” 하지 않던가….
그들을 찾아갔다가 돌아와 누우면 그들이 한 말이 풍선처럼 한 개씩 내 머리로 떠올랐다.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로부터 거의 28년이 흐른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그해 여름과 이듬해 봄, 여름동안 자주 비행기를 탔고, 여전히 살아있으며, 변함없이 끌어댈 수 있는 돈만큼 인생을 소진하며 스스로에게 속임 당하고 , 속이면서 …. 아직,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