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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02. 2024

자유自由

과연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란 게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다시 한남동으로 이사를 했다.

강남에서 초중고를 다니다 강북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나는  잘 오지도 않는 버스 한 대를 타기 위해 오래 기다리거나 행여 그 버스를 놓칠세라 허둥지둥 버스정류장으로 향해야 했다.

강다리를 건너 집으로 오는 길에는  어느 교회의 이름밑에 늘 머리 긴 예수님이 양 한 마리를 끌어안고 서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 버스가 급 커브를 돌아 왼편으로 향할 때는 꼭 그 예수님 벽화와 부딪힐 거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만큼  가까워지곤 했다. 그때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예수님 발치에 쓰여 있는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구절이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읽게 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힌 것 같았다.

진리... 자유...

진리라는 건 뭘까?

그게 뭐길래 자유롭게 해 준다는 걸까?


그래, 어쨌든  자유로워지면 참 좋겠다.

공부로부터, 엄격한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자유라는 말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창공을 훨훨 날 수 있는 새처럼,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자유가 어디든, 어떻게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자유란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손에 쥘 수 없는 공기처럼  어딘가에 있는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아무도 눈에 보이게 나를 묶어놓은 것은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항상 나는 자유하지 않았다.

관계로부터, 기대로부터, 나 자신의 욕심과 상처와, 좌절로부터도.

이제는 책임져야 할 아이들까지 얹힌 나를 보며, 나는 정말 훨훨 날아 도망가고 싶은 데 갈 수가 없었다.


혼자 있는 고요한 밤시간이 되면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연기처럼 날아가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없어지고 싶어.




도무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열심히, 성심껏, 시부모에게도  잘한다고 했는데 왜 결과가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의 마음과 행동이  왜 내 눈앞에서와 다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늘 손해 보는 쪽으로 기울고 살았는데 왜 내 인생이 꼬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실은, 정말 결혼 전 남편에게 기대한 것 단 한 가지는 적어도 이 사람은 바람피우거나 불성실해서 나를 속 썩이진 않을 거라는 것이었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내 마음속으로 가장 크게 점수를 준 바로 그 부분에서 ,

마치 누가 엿듣고 작정하고 엿먹이듯이 나에게 연달아 일어난 남편의 외도사건들은... 나에겐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고라도 안정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외갓집과 우리 집을 아침저녁으로 오가면서 돈의 힘이 얼마나 센 건지, 누릴 수 있는 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생하게 보며 자랐다. 외할머니로부터 늘  가난이 문지방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틈으로 달아나는 거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랐다. 그 말에 대해 마음에는 늘 반발은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처럼 바보같이 사랑하나만으로 결혼하진 않겠다고 혼자 결심하고 자랐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늘 사랑하나에 목을 맨 허무맹랑한  죄인이었다.



나는 외로웠다.

그리고 더 외로워졌다.

황량한 사막에 혼자 고립된것 같았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않았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겪어보지 않았던 종류의 내 문제들은 놀라움과 충격이긴 했지만 그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충분히 자기 삶의 문제들로 이미 바쁘고 분주했다.

어느누구도 나만큼 아프고 괴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경계를 확인하면 할수록 나는 설명하기도 귀찮아졌다.  

게다가 철저히 시부모님들에게서 조차,  며느리 탓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나는 혼자의 세상으로 들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혼자 고립되었다.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었던 건... 자유였다.


어디로든 떠날 자유.

언제든 떠날 자유.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을 자유.

어느것에도 얽매이지 않을수 있는 자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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