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시부모님은 아주버님을 결혼시키고 미국에 오셨다.
나에게 늘 미안해하시고, 안쓰러워하셨던 시어른들의 방문이라 나도 반가운 마음이었다.
큰 염원이셨던 맏아들의 결혼을 마치고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와 손주들을 보러 몇 년 만에 방문하신 것이었다. 결혼하여 새로 들인 식구와 인사도 못 나눈 나에게, 시부모님들은 결혼 소식을 자세히 전해주셨다.
그들의 궁합이 얼마나 좋은지, 새로맞이한 큰며느리와 아주버님에 관한 소식을 전하시는데 기쁨이 넘쳐보였다. 집안의 경사였으니, 나도 되레 어른들이 외롭지 않으실거 같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어른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비즈니스와 우리의 생활전반을 책임져주신 시어른들은 곧 나에게는 생명줄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뿐인가! 늘 내 앞에서 아들을 원망하고 내 편을 들어주시지 않았던가?
돈에 대한 계산과 욕심이 남다르신 시부모님들을 뵈며 그런부분이 좋게 느껴진 적은 없었지만, 그분들의 돈욕심과 계산이 나와 아이들을 지켜주는 요새 같아서 든든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남편의 비행에 대한 고발이 그분들의 귀에 노래로 들렸을 리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화장실을 가다가 두 분이 주무시기 전 침상에서 서로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애(남편)가 계속 저렇게 겉돌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지(며느리)가 저렇게 설쳐대고 남편더러 장보고 애들 보게 하니 될 일이 있을까! 저렇게 얼굴을 죽상을 하고 있는데 누가 이뻐하겠누!"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숨죽여 들은 두 분의 대화는 십여분 이어지다가 끝났다.
결국 내 탓이라는 것이다.
모범생이던 아들이 말도 안 되는 비행을 하는 모든 이유가 며느리라는 이유이며, 궁합이며, 집안으로 남편을 불러들이지 못하는 내 문제라는 것이었다.
나는 시부모님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잘 참았다.
그분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모든 돈들이 내 생존을 이어주고 있었으므로.
나뿐 아니라 내 새끼들의 생존도 달려있었으므로.
내 마음의 병은 그때부터 깊어졌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내편이 아니구나.
날 선 외로움과 배신감이 나를 쓱쓱 베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토해내놓고 싶었다.
모든 잘못된 일들의 귀결이 내 발등에 떨어지고 그놈의 궁합이니, 팔자니 하는 일들 앞에 나는 그냥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사실, 그것들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싶었다.
정해진 운명이나 궁합이라는 것을 내가 부인하거나 폄하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잘 맞추기로 명성이 자자한 수많은 철학관이나 점집을 다니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 한 가지는,
전달해 주는 대언자의 영이 얼마나 맑고 욕심이 없느냐에 따라 풀이와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철학관과 점집순례를 하시던 시어머니와 나는 같은 장소를 일주일 간격으로 따로 우연히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가 그곳에서 들으신 내용과 내가 들은 내용이 너무 달라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같은 사람, 같은 사주이지만 누가 보러 갔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해준 것이다.
앞에서 돈 내는 사람의 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뱉어준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사실 한국에서는 뭘 보러 다니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말처럼, 그리고 양심 있는 어떤 초보 역술가가 충고해 준 것처럼,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될 수 있으면 가장 착하고 선한 방법을 택해서 성심을 다하면 그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달래 왔었다.
그래서 사주 역학을 보고 이혼하라는 소리를 듣고 온 다음엔 사실 더 내 마음을 다잡고 꼭 살아내리라, 하고 결심하곤 했다.
이런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아마도 나의 오기였을까? 교만이었을까?
나는 시부모님이 다녀가신 그해 가을부터 시름시름해졌다.
가게를 팔려고 내놓았다. 잘되는 가게였으니 사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남들에게는 쉬운 길도 나에게는 굽이굽이 어려웠다. 마치 안 보이는 누군가가, 일부러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 같았다. 모두들 떼놓은 당상이라는 일들도 내 앞길에서는 구부러졌고, 길게 늘어졌고, 빠그라졌고, 어긋났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세상이 모두 합심해서 나를 골탕 먹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가게를 팔면서 4만 불 현금을 권리금으로 요구하는 건물주인에게 생애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방패가 되어주긴커녕 내 시름의 첫 단추였던 남편은 말할 것도 없었다.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으나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 마음속으로 저지른 증오와 살인의 독은 나를 점점 상하게 했다.
나는 (그들을 죽일 수 없었으므로 ) 나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쉼 없는 불행에 대한 억울함으로) 나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노력에도 변치 않는 모든 사람과 사건에 대해) 죽음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되었다.
어느 날 깊은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담배를 들고나간 날..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 딱 3년만 해보고 싶은 것 해보고 죽어버리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