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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08. 2024

너 때문에

잘못된 모든 것들을 향한 나의 변명

부모가 된다는 일.

부모의 역할을 한다는 일.

부모의 삶을 산다는 일.


첫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옆에 누운 아이가 너무나 무서웠었다.

출산 준비를 하며 일일이 유난을 떨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사람 같지 않은데 , 또 너무나 사람 같은 작은 살덩어리가... 하는 것이라곤 울고 먹고 싸는 일 밖에 없어 도무지 혼자힘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워 보이는 무기력한 그 존재가 숨이 턱 막히도록 무서웠다.


둘 중에 하나가 죽기 전엔 끝나지 않을 인연. 아니, 죽더라도 이어질 인연.

그 무거운 숙명 같은 존재가 나를 엄청난 책임으로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무서웠다.

바꿀 수 없는 일, 없던 일로 할 수 없는 일...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남은 평생 그 아이와 내가 보이던 보이지 않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넓은 망망대해를 뗏목하나 타고 둥실 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두어 달은 저녁시간만 되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혼자서도 헤쳐 나오기 힘든, 깊은 인생의 바다를 그 작은 생명이 잘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잘 돌봐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섰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렇게  항상 내 마음과 생각 언저리에 있었다.

깊은 굴 속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처럼, 즐거운 일밖에 없을 때에도 나를 서늘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그런 존재가 내 눈앞에 셋이나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소년과 , 이제 유치원에 입학을 한 작은 여자아이.

그리고 막내이모의 딸이자 나에게도 딸 같은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집안의 가장이어야 했던 남편이었던 사람은 가방을 꾸려 한국으로 떠났다.

그가 떠난 후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알면서도 나는 깊고 긴 날숨을 내 쉬었다.

나는 그때 (마음으로) 그와 이혼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하느님이  있다면 이제는 나를 좀 살려주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첫째와 둘째, 그리고 첫째 아이와 같은 학년에 다니는 사촌동생까지 챙기며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음이 돌아선 시댁어른들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아주 기본적 생활비만 보내주셨다.  

나는 급하게 어느 회사의 전화받는 일로 취직을 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웠다.

아이들을 돌보며 회사 다니는 일이란 남들도 다들 하는 일일 테지만 나는 짬짬이 법원에도 가야 했고, 변호사도 만나야 했으며, 세금 관련 문제로 IRS와 연락해야 하는 일들도 잦았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쳐 그를 찾아대는 것이었다.

그와 있었던 채무관계에 대해서 나에게 책임을 묻는 그들 앞에서 나는 참으로 무력했다.





아이들이 쉼 없이 자라는 동안 생기는 모든 일들을 기억해 주마 했던 엄마는 , 사실 그 기간 동안의 아이들도, 나의 모습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빴다고 하지만, 시간이 벌어주는 그 공간 사이에서 나는 그저 떠다니고 있었다.

삶은 매섭게 나를 몰아세웠다.

계획이나 내 생각은 이미 중요하지도 않았다.

닥치는 일들을 그냥 당할 뿐이었다.

나는 그 모든 일들의 회오리 속에 휘둘려 도는 먼지 같은 느낌이었다.


힘든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아이들을 먹일 음식을 하면서 마시는 공복의 술 한잔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곤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난 깊은 새벽이 되면 나는 누웠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어느 날, 아들이 예사롭지 않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나랑 이야기할 수 있어?

응, 말해봐,

엄마, 내 눈을 쳐다봐.

왜 그래?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돌아서서 실내에서 입는 내 패딩조끼를 입고 서 있는 아들아이를 바라보았다.

늘, 아이들을 야단칠 일이 있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쳤었다.


엄마 담배 피워?

……응.

엄마 그게 몸에 얼마나 나쁜 건데...

어떻게 알았어?

엄마 옷주머니에서 담배 봤어, 그리고... 엄마가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 오래 걸리는 거 알았어. 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랬구나...

엄마, 담배 피우지 마, 나랑 약속해, 응?

엄마는... 그게 오랫동안 슬플 때 친구였어서.. 당장은 약속을 못 지킬 거 같아. 하지만 노력할게.


슬퍼하는 아이의 눈동자만큼이나, 돌아서서 다시 설거지를 하는 내 손은 떨렸다.

이미 아이도 우리 집의 커다란 근심 앞에 작디작은 엄마가 힘든 싸움을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이유로 모든 잘못된 것의 면죄를 받을 순 없겠지만 나는 아이 앞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마음이 황망하고 바빠서 겨우 아이들 치다꺼리라고는 먹는 것과 빨래해 주는 것과 스쿨버스를 태우고 내리는 일이 고작이었다.

뿌려놓은 씨앗들이 자라는 건, 하늘과 바람과 땅과 태양이 해주는 일인 것처럼,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부실한 부모가 펼쳐놓은 환경에서도 때에 따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손길로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 게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발버둥만 쳤을 뿐.

그 발버둥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든것 같았다.


그 상황 한가운데 놓여 심긴 식물처럼 도망도 갈 줄 모르고 부모가 온 세상의 전부인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책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곧이어 내 안에서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 중의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은 너 때문이라고. 나는 잘못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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