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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13. 2024

어른 아닌 어른

너 때문이라고, 다 그에게 책임을 물리고 싶었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만든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주어진 대로만 무난하게 살았더라도 실패할 이유가 없었던 그 조건에서,

이렇게 망가지게 된 모든 이유는 다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만 찾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나를 자책하고 있었다.

어쩜, 다 내 탓 일지도 몰라.

내가 더 똑똑했더라면, 내가 더 야무졌었다면, 내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내가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를 향해 던졌던 칼날은 부머랭처럼 나를 향해 되돌아와서 나를 찔렀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부모님들께 미안한 마음, 행복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 존재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이 마치 돌덩어리를 발목에 매단 채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나를 깊은 우울로 이끌었다.

빚쟁이들을 마주할 때, 해결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편지 한 장으로 날아와 나의 손에 들려있을 때, 타던 차가 어느 날 토잉카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이들 학교에서 등록금 연체로 연락을 받을 때, 은행에서 잔고부족으로 연락이 올떄....


나를 찾는 그 수많은 문제들은  표면적으로는 돈과 모든 연관이 되어있었지만 실은 그것은 돈 뒤에 숨은 헛된 욕망의 문제들이었고, 책임지지 못하는 영역으로 넘어간 부끄러운 존재의 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쉼 없이 자라는 아이들과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실상을 마주하기 두려울 만큼 망가졌다.


사춘기를 맞으며 큰아이에게 걱정을 끼친 것뿐 아니라, 작은 아이는 갑자기 짐가방을 들고 사라진 아빠의 존재에 대해 불안해하며 심리적으로 닥친일 들을 몸으로 반응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유분증을 앓으며 학교에서 매번 호출을 해댔다.

신체적 병명으로는 극심한 변비와 식욕부진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원인이 불안한 마음에서 비롯된,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아 신체의 모든 기능을 HOLD 하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니다 병원에서 연결해 준 심리 상담을 받으며 아이의 병명을 겨우 알게 되었다.


수시로 작은 아이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일 학년 아이가 대소변을 자주 실수하고 학교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친구들도 사귀지 못했다.  

양호실에서 수치심과 불안함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수습해서 데리고 나오며 나는 피눈물을 삼켰다.

처음에 시댁에서나 애들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돈을 더 많이 타 내려는 거짓이라고 의심을 받았다.

겨우 방학 때 아이를 아빠와 보내도록 한국에 보내고 나서야 그들은 아이 상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돈을 조금 더 보낼 테니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집에서 돌보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동의하셨다.


시어른들도 잘못되어 가는 이 모슨 상황의 원인을 오직 당신들의 자식인 아들 탓만 하고 싶진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남의 탓으로 모든 잘못을 돌리고 싶었던 것처럼, 그들도 내 탓을 하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딸의 증상은 쉬이 낫지 않았다.

방학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딸아이를 위해 나는 2년간 다니던 직장을 마무리지었다.

그럼에도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는 나의 마음과 생각은 미래의 계획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무기력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그저 함께 등을  맞대고 어쩔 줄 몰라하는 ,

몸만 나이 든.... 어른 아닌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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