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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19. 2024

매사에 때가 있으니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그 때

나는 꿈을 꾸었다.

잠이 들면 깨어나지 않는 꿈을.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말이다.

매번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는.... 그렇게 잠듦도  무서웠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도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눈뜨면 맞이하게 되는 그 잔인한 현실들이 나는 순간마다 아팠다.

어느 날 문득 보게 되는 아이들의 자라남도, 나는 두려웠다.

숨길 수 없는 나의 무력함과 연약함이 아이들에게 노출될 때마다 , 무서웠다.


사실 가장 무서웠던 건, 내 인생은 이대로 저주받은 괴로운 인생으로 끝나게 될 건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전기가 끊길 거라는 노티스가 붙은 그날, 아들은 당혹하고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일부터 전기가 끊긴대.. 어떡해?

뭘, 어떻게 해...... 음... 그럼 우리 촛불 켜고 살면 돼...

엄마, 그럼 냉장고도 다 꺼질 텐데 냉동실에 있는  음식은 어떻게 해??

........ 아, 그렇구나.....


이 멍청한 대화를 이어가는 엄마가 된 상황이 나의 현실이었다.


작은 아이의 상담은 두 번에 한 번씩 부모 상담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확인하는 하게 되는 것은  아이의 모습 한가운데에는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아이의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남의 탓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는 나를 세울 수 없는 한, 나는 변명할 수 없는 거였다.

내가 지켜주지 못하는 한, 어린아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거였으니까.

숱한 상담의 결과로 얻은 것은, 내 책임의 이유와 한계였다.

둘 중에 하나라도 정신 차려야 했다.

하지만, 생각은 그러했어도 몸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사실, 그게 더 미치겠는 거였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나도 나의 불행에 대해  낙담에 낙담을 더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에 시간이 더해져 남 탓으로 내 뱃속을 꽉 채운 상태였다.  누가 건드리면 우울과 욕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어떤 위로도, 어떤 이야기도 내겐 귀찮기만 할 뿐,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껏 내 불행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내 상처를 들추고 또 들추며.... 화가 났고, 욕 하고 싶었다.



잠이 안 와 힘들었던 어느 날, 나는 곁에 있던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

술이나 약도 듣지 않던 어느 날 밤이었다.

재미없는 책을 읽다 잠들 참이었다.

하필, 그날 잡아든 책이 일을 그만두고 나가신 애들 봐주시던 이모님이 두고 간 성경책이었다.

나의 눈길은 전도서 3장에서 멈추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 출떄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 꿰말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



나는 돌로 한대 쾅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혜는 그런 거였다.

"때"를 아는 것.


내 삶에서 내가 노력해야 하는 때와 노력을 줄이는데 애써야 하는 때를 아는 것.

나에게 괴로운 때가 오고 나면 기쁜 순간도 있음을 아는 것.

밤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아침이 밝아올 것을 아는 것.

모든 것이 알맞은 때에 알맞게 일어남을 믿는 것.

묶일 때가 있으면 풀어질 때가 온다는 것도 아는 것.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온다는 것을 아는 것.

헤어짐 뒤에는 또 다른 만남의 기쁨이 온다는 것을 믿는 것.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궁극의 고통과 기쁨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고.. 고통이 있지 않는 한, 순전한 기쁨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사실, 무작정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었다.

그건 인간 본성을 무시한 가짜였다.

되는 인간도 있고, 안 되는 인간도 있는 진리였다.

통할 때가 있고, 통하지 않을 때가 있는 진리였던 거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때가 많다고 느낀 건 그래서였다.


사람마다 그 때는 다르다.

힘을 쓸 때와 , 힘을 풀 때가 있다는 것.




나는 그날 밤, 그 어느 누구의 공허한 위로보다 더한 위로를 느꼈다.

나의 때를 읽는 것, 내가 자연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

변치 않는 진리가 주는 위엄은 그런 거였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공허한 위로가 아니라,

내처 꽃길만 걷게 해 달라는 헛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인생에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설득력 있는 위로였다.


때에 따라 뜨고 지는 태양처럼,

시절따라 오고가는 계절처럼.


그리고, 그 공평한 진리 안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안도감이 슬며시 나를 붙잡는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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