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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26. 2024

다시, 또다시

파산승인이 법원에서 결정되었다.

우리의 파산요청을 거부해달라고 또다른 소송을 건 남편과 연관된 사람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2년이나 더 걸린 우리의 파산이 마무리됨으로, 우리는 급하게 집을 비우고 살림을 정리해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를 한두 번 하는게 아니었지만 줄여가는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걸 줄이고 팔고 가야 하는 이사는 고달팠지만, 정리를 해야 했다.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렵게 기력이 빠진 상태에서 나는 짐정리를 하고 이삿짐을 싸면서 지난 나의 세월과 흔적들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물건에 대한 애착과 과거의 기록에 대한 습관은 실로 방대한 양의 짐으로 쌓여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태중일기, 육아일기 등 아이들에 대한 기록과 짐도 많았지만 살아오면서 버리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끌고 다닌 애착물건들도...... 나는 이젠

그냥 너무나 버거웠다.

추억을 들춰보기도 귀찮았다.

그런 사치는 이미 내 처지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명품이라는 살림살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정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을 나는 살림살이에 다 쏟아부은 거 같았다. 그릇이며 가구며, 사계절 이불과 커튼들, 나름 가지고 있던 시계와 패물과 명품가방들을 중고가게에 팔았다.  

돈이 되는 모든 것들을 팔았다.

처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 같은 가구들도 다 주변에 나눠주었다.

구멍 난 배에  몸을 실은 마지막 생존자처럼 우리는, 아니 나는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이 아니라면 다 없애야 했다.

지금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그렇게 생뚱맞아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모든 살림에 정성을 다했던 나의 헛헛한 마음에 말을 걸었다.


세상 모든 게 참 헛되구나. 화려하게 한 결혼도, 죽는 날까지 지키기로 한 서약도, 수많은 돈을 들여 제작한 약혼이나 결혼앨범도, 이쁜 가정을 꿈꾸며 모은 살림살이들도, 시계며 반지들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느라 쓴 돈들과, 팔아도 반값도 안 되는 사치품들이란 게 참으로 쓸모없는 돈지랄이었네.

눈에 보이는 이런 물건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가장 소중한걸... 내가 몰랐네...


보이지 않는  우리 몸속 어딘가의 작은 마음조차 함께 둘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이 남긴 것이라곤... 결국 다 쓰레기였다.


내가 당장 죽어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존재할 이런 물건들을, 나보다 생명이 길 이 물건들을... 내가 “소유”    했다고 생각했던 건 얼마나 큰 착각이었나!

나는 한 조각 내 마음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거리면서 물건을 사들이고 쌓아놓으며 뭔가를 가졌다고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싶었다.

식탁보와 아름다운 식기들, 귀한 커트러리나 리넨들은.... 그것을 기쁘게 사용할 사람들에 의해 빛이 나는 것이지, 뿔뿔이 갈라진 가족들이 사용할 일 없는 물건들은 …그냥 쓸모없는 짐이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였다.

허세스러운 사치품도 미련 없이 잘 사용할 것 같은 친구나 친지들에게 다 나눠주었다.

줄어든 짐만큼 나도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와 내 짐들이 줄어들고 줄어들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다.





작은 아이의 학교도 큰아이와 막내이모 딸이 같이 다니는 학교로 옮기고 우리는 학교 앞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로 옮기고 나는 일할 데를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사 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남편은 한국에서 잠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본 낯선 그는 표정이며, 행동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오그라들었다.

항상 그의 알 수 없는 들뜸은 꼭 그만큼  나에게 불길한 기운으로 전달되어 왔다. 하지만 오랜 경험에 의한 습관 같은 감정일 거라 생각하며 나는 애써 머리를 휘저었다. 그저  오랜만에 본 아빠를 반가워하는 작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  나는 불안한 상상을 하는 내 머리를 쿵 쥐어박았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만에  그는 다시 떠났다.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몹시 바쁜 티를 내던 그는 즐거이 떠나는 것 같았다.

그가 공항으로  간다며 집 앞에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가족 중  가장 아빠를 사랑하는 딸내미는 떠나는 그의 차를 잡아챌 모양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멀어지는 아빠가 탄 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작디작은 아이가  멈춰 서서 서럽게 울었다.


그 모습이.... 참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모습이었다.


https://brunch.co.kr/@monicam1x/10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누면서 쓴 그때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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