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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an 30. 2024

어릴 적, 그 아이

내 기억속의 그 아이



어릴 적 나는 윗동네의 외갓집과 아랫동네의 작은 셋방을 오가며 살았다.

하루에도 몇 번을 그 사이를 오가며 지내야 했던 나는 친구도, 생활도 이중적이었다.  

부잣집동네 살던 외갓집으로 하교를 하고, 외갓집 식구들과 저녁 먹고 놀고 있다가 일을 마친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면 엄마와 함께 아랫동네 우리 집 셋방으로 돌아가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친구도 윗동네 친구와는 낮에 놀고, 아랫동네 친구들과 밤에 놀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대학을 다니고 있던 고학생과  결혼한 맏딸과 가진 것 없는 하나 없는 사위사이에서 덜컥 태어나버린 첫 손주인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지극정성을 다해주셨다.

엄마아빠의 부족함을 외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덮고 싸서... 나는 어릴 적 세상에 아쉬운 것 없는 아이였었다.

할아버지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셨고, 항상 내 손을 잡거나 목말을 태우고 다니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면 할머니나 이모나 삼촌은 종종 나에게 장난 삼아 더 구박 아닌 구박을 하기도 했는데 , 지금의 내 기억에도 나는 그 구박에 절대 기죽지 않았다. 일부러 그들이 나를 놀려보려고  잔소리를 하거나  심술맞은 언행을 해도 나는 서러워하거나 기죽지 않았다. 내 뒤에는 늘 집안의 제일 큰 기둥이신 외할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스름히 땅거미가 지는 저녁이 되고  어느덧 할아버지의 귀가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면 나는 세상을 다 얻은듯 그렇게 신이 났다.

마당을 통과해 집안 현관으로 들어오시는  할아버지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신을 벗고 올라오시게 될 마루의 끝머리에 납작 엎드려 대왕마마 모시는 애기 궁녀처럼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 올려주실 때까지  머리를 처박고 침을 꼴깍 삼키곤 하였다.

그런 나를 보며 할아버지가  허허허! 하고 웃음을 지으시며 번쩍 안아 올리시면,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낮동안 할머니와 삼촌, 이모가 나에게 했던 속상한 언행들을 모조리 기억해 내고 고자질했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한,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저녁마다 늘 셋방으로 돌아가는 나를 보내며 속상해하셨지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저 외할머니께 나는 종종,

"할머니는 할아버지같이 키 크고 돈 많은 신랑한테 시집가놓고 울 엄마는 왜 키 작고 가난한 남자한테 시집보냈어?"

라고 물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속이 상해 판소리 하듯 줄줄줄 뜻 모를 이야기들을 하시다가  할아버지의 신음 같은 호통 한 음절을 들어야 입을 다무시곤 하셨다.

그 뜻 모를 소리들은 엄마 아빠가 넘어서기 어려웠던 경제적, 관계적 난관 때문이었다.

효자중의 효자인 아버지는 돈을 벌어도 가난했던 친가집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나와 엄마는 챙기질 못했고,

억척스러운 이북출신 우리 외할머니는 그런 사위와 사돈이 못마땅해 죽겠는 거였다.

그 당시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심각한 양가집안의 반목과 반대로...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염두에 둔 별거를 꽤 몇 번, 꽤 길게 하셨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아빠와 함께한 기억이 없었다.

저녁에 셋방으로 내려와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곤 했는데 종종 그 동네 친구들은 내가 입고 있는  할아버지가 사주신 옷과 신발들을 보고 심술부리고 부러워하곤 했다 .

그리고 그들은 내가 다 가졌지만 채워지지 못했던 한 가지, 늘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던 그것, 아빠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나를 놀렸다.


" 쳇! 넌 그래도 아빠가 없잖아!"

" 야!!!... 나도 아빠 있어! 그리고 난 할아버지도 있어!"

 나는 도망치듯 들어와 엄마 치마폭에 머리를 묻고 뱃속부터 올라온 울음을 서럽고도 ,길게 울었다.



끝까지 살아내지 못할 결혼일 거라 했던 엄마아빠의 결혼을 오늘까지 이어 준건 그 나날들의 내 울음이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무한대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도 내게 없었던 그 한가지를  동네 친구들은 나에게 확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 서늘한 저녁, 서러웠던 상실감과 허전함 때문에 나는 아빠의 존재를 더 강하게  목말라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가끔이라도 들르는 아빠의 양복 뒷꼬리를 붙잡고 나는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키 작고 능력 없는 아빠였어도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누가 뭐래도 내 아빠였으니까.


그렇게 자란 나였다.


뒤늦게 낳은 나의 딸, 작은 아이가 떠나는 아빠를 향해 뛰어가며  울 때...

어릴 적 살던 한남동,

길모퉁이에서 서럽게 울던 작은 꼬마가 거기에 같이 서 있는 것을 , 나는 보았다.



나의 어릴적 이야기,

https://brunch.co.kr/@monicam1x/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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