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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Nov 19. 2021

 그 입을 다물라

신중년 처세술 1강: 충고하지 말라

오늘  오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의 시작은 나름 상쾌하고 좋았는데..
저녁 무렵 집에 들어와 딸이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기계적으로 퍼먹으며 생각했다.

‘이 뭉근한 기분 나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이지?

오늘 무엇을 했었던지, 누굴 만났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던지 리플레이를 해 보았다. 걸리는 지점이 하나 있었다.
오전에 A 씨를 만났고 잠깐 대화를 나누었었다.
A 씨는 종종 일 때문에 만나고 보게 되는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녀는 나보다 15년 많은 연배의 사람이고 나를 그다지 세세히 잘 알진 못하지만 그간 만나온 시간과 여러 대화들을 통해 대충의 나를 짐작하고 아는, 표면적인 인간관계인 사람이다. 근간의 안부를 물어오는 그녀에게 나는 나름 정직하고 솔직하게 , 간추려 대답을 했다.
지난 연말에 좀 힘들었다는 이야기, 아마도 신체적으로는 갱년기 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으로부터 우울했었으며, 몇 달 극복해보려 이런저런 노력을 했고, 이제는 괜찮다고.
지나고 보니 왜 마음이 힘들었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겪고 보니 겸손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까지 있었다고 마무리를 했다.
의례적 근황을 묻던 그녀에게 의례적 대답이면 충분한 것을, 내가 너무 정성스러운 대답을 한 것이었을까?
곧이어 카운슬러로 돌변한 A 씨는  내게 몸을 바짝 당겨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를 15년이나 더 먹은 자신의 경험과 , 개선해야 할 나의 태도와 생각들과 습관까지 자신의 견해로 짚어가며 좌르르 풀어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요동치며 반발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으며 내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그분의 요점정리에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난 그 사람 앞에서 그저 바보가 된 거 같았다.
내가 내 말뜻을 다시 설명하려 하면, 그것은 마치  15년 선배의 반 도사급 경지에 오른 그녀의 나보다

“더한”, “앞선” ,” 많은” 경험과 연륜을,  내가 무시하는 셈이 된다는 듯 내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내 입을 막았다.

그만큼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분은?
그만큼 나를 사랑하여서 아끼는 마음으로 충고하신 것일까?
내가 다 잘 지내고 모든 게 만족스러우며,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면  오늘 우리의 대화는 달라졌을까?

나는 뭉근한 언짢음이 마치 인절미 떡 하나  식도 중간에 걸쳐 목이 메인 사람처럼..  오후 내내 치치고 피곤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곤 생각해보게 되었다.
충고에 관하여,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책 안에서 읽은 단편인 , “충고하지 말라는 충고” 가 생각났다. 책에서 금슬 좋은 부부의 비결이 뭐냐 물었을 때 첫째도, 둘째도 서로 충고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것만은 그 상대를 위해 해줘야 싶은 말이다 … 라는 생각이 들어도 절대 충고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몇 달 전 읽은  책의 내용이 어쩜 그리 정확하게 떠오르는지!


그리고 나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이 듦이 연륜을 보증하거나 내 경험과 지식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통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꾸려갈 때에 스스로 원하거나 가능한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과 그 깨달음의 시기와 경험의 내용은 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그러므로 가장 좋은 우리의 태도나 리액션은 진심을 다해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지켜봐 주고, 의견을 물을 때에만 입을 열며 ,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온전하고 겸손한 listener 로서의 배려는 사랑의 마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그러한 실수가 없었노라고 자신할 수 없다. 아마 나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실수를 남들에게 했을 것이다..
조심한다 해도 어쭙잖은 충고를 남발했을 것이고 내 기준으로 남을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이리 생각하다 보니 속은 편치 않고 입맛이 쓰다.  나도 하는 실수를 그도 했을 뿐인데 더 이상 A에게 화를 내는 일은 의미가 없었다. 쿨한 척 서둘러 꼬리를 내리고 잊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내 근황을 가감 없이 말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위선이나 거짓으로 대할 수는 없으니 정말 말은 줄여야겠다.

특히 , 충고는  꼭 해야 할 상황이 보이더라도 , 하지 않을 터이다.

허벅지를 꼬집는 한이 있어도 나는 입을 다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닫고 지갑을 열지어다..라는 말이 더 이상 리얼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그 여인네가 억지로 입에 넣어준 충고의 떡 덩어리를  냉보리차 한 사발로 시원하게 쓸어내리고 나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 무엇보다 이런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신 A 씨에게 참 감사한 저녁이다. 진심으로.
나잇값 하며 늙어가기는 이렇게 경험으로 배우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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