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옆방에서 나오던 남편에 악 하면서 나자빠졌다. 맥없이 뒤로 쓰러져 뒤통수를 바닥에 ‘쿵’하고 박은 남편을 보곤 놀래서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달려갔다. 머리를 잡고 일으켜 세워 이불로 데려가니, 엎드린 남편이 머리, 목, 어깨, 등을 만져달라고 한다.
“오빠 괜찮아? 미끄러진 거야? 아님 쓰러진 거야?”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나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 좀 문질러 봐.”
라며 오른쪽 날개 뼈 주변을 가리켰다. 천천히 마사지해주면서 다시 물었다.
“오빠 미끄러진 거야, 쓰러진 거야?”
“갑자기 너무 어지러워서 뒤로 넘어졌다. 우와 이러다가 대출도 다 못 갚고 죽으면 어쩌지?”
“에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만약 또 어지러우면 옆에 뭐라고 꽉 잡아. 그리고 혹시 못 잡을 거 같으면 넘어질 때 머리는 보호해야 해. 머리 밑으로 양 손을 받치던지, 아님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있는 힘껏 머리를 치켜올려! 알았지?”
자기 농담에 피식거리는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남편은 결혼 후 거의 쉰 적이 없었다. 휴일과 주말도 반납하고 일을 했다. 내가 유산 수술을 한 날에도, 조산 기운으로 대학병원으로 실려 갈 때도, 심지어 태아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출산이라는 말을 듣던 아이 출산하는 날에도 남편은 일이 우선이었다. 대출이 많아 대출을 갚아야 했고, 상환 만료일을 하루라도 당기기 위해 남편은 늘 긴장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시간이 날 때면 투잡, 쓰리잡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육아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남편의 소득은 대부분 대출상환에 들어갔기 때문에 내 소득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웠다. 식비, 교육비, 소모품비 등 출산 이후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까지도 생활비는 내 몫이었다.
대출 상환에 매여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바친 남편은 휴일이나 주말도 아이와 보내는 대신 일을 택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유도 많지만) 대출을 놓고 많이 싸웠다. 그렇게 근 7년을 다툰 것 같다. 부부싸움 영역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만큼, 당장이라도 가정법원에 이혼 서류 제출하러 갈 것처럼 매번 온 힘을 다해 악쓰며 싸운 것 같다.
그랬던 남편이 40대가 들어 생각이 약간 바뀌었는지 가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42세인 올해는 유독 가정적이다. 늘 긴장하던 그가 마음에 여유를 찾은 것 같아 내심 반가웠다.
“오빠, 40이 넘더니 여성호르몬이 나오는 거 아냐? 말도 많아지고 좀 변했어!”
“맞제? 나도 좀 그런 것 같다.”
그렇게 7년을 앓던 우리의 갈등이 해소 국면을 맞이했다. 조금씩 안정된 가정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다니! 덜컥 겁이 났다. 이제야 좀 평온한 가정을 누리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생각을 읽고,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오빠, 아프지 마! 그리고 내가 한 말 잊지 마, 어지러우면 옆에 뭐라도 잡아. 그리고 쓰러질 때면, 온 힘을 다해 머리가 땅에 안 부딪히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