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다 해 보고 나서 자신에게 예정된 운명이 000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그동안 000를 회피하려 얼마나 애써왔는지 상관없다. 어느 순간 당신 앞에는 000만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이후부터 당신은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당신의 마음이 좌우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
작년에 구입하여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서재에 꼽아두었던 책을 이번에 다시 읽으며 발췌한 글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배를 곯고, 이혼을 하고, 000의 권태를 겪는 가운데 000가 자신의 운명임을 알았다고 한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가 말한 000의 자리에 굳이 내가 생각하는 여러 단어를 넣어보았다. '남편, 가정, 여자, 주부, 퇴사, 결혼, 육아, 워킹맘, 독서모임 등등등'. 그리고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가 싱글일 때 만났던 남자들의 이름도 몇몇 넣어보았다. '000, △△△, ▽▽▽' 우와. 어떤 단어를 넣어도 의미가 성립하였다.
의미심장한 구절인 “모든 일을 다 해보고 나서”의 범위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으나, 000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삶을 살아내기가 참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위 구절을 읽으며 나의 운명을 생각했다. 가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말해온 나로서 참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가정의 전통적인 아내상인 '순종'과 '순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등한 조직에서, 평등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했기에, 결혼한 여자에게 기대되는 전통적인 모습이 내키지 않았고 불편했다. 대학 때도, 사회생활에서도 남녀 역할 차이를 크게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시댁이 요구하는 '전통적 가부장적 가정의 아내',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순종하고, 환하게 웃기만 하는 아내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센스 있고 개방적이고 능력 있는 ‘엄마’는 하되 남편 말에 무조건 예스하며 토 달지 않는 ‘아내’는 거부하고 싶었다. 부부란 독립된 남성과 여성으로 한집에서 평등하게 살며 공동으로 경제활동과 육아, 살림을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체적 여건으로 ‘출산’은 오롯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외 가정의 모든 것은 능력에 따라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가득 차자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뿐만 아니라, '아내'라는 정체성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러한 나날이 지나자 애정표현과 가정을 위한 봉사를 하는 남편을 앞에 두고도 무덤덤해졌다. 서로 위해주는 부부라기보다, 한 집에 사는 동지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모니카, 가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아? 그런데 너의 현실에서, 가정의 근간인 너의 부부는 안녕하니?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알지 못했겠지만, 나는 이 '아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데 적지 않은 씨름을 했다. 적지 않은 기간 회피, 유예, 거부 등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 끝에 결국 가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조건 순종적이거나 순응하는 아내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아내’라는 정체성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한 것이다. 아내를 내 정체성으로 가져왔을 때, 우리 가정 공동체가 하나로 평온하게 받아들여졌다. 우리 부부와 아이가 각각 특별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라고 여겨졌다.
작가의 글처럼 피할 수 없는 '아내'라는 운명을 받아들였을 때, 개인적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경험했다.
누구든 자신만의 000이 있을 것 같다. 현재 000이 운명인지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고, 000을 운명으로 인정했으나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고, 000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삶을 참 잘했다고 안도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또 어쩜 000이 무엇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아님 000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운명이 당신의 삶을 진한 즐거움으로 이끌길 바란다. 당장은 000을 삶에 받아들인 탓에 흔들리고, 아리고, 힘겨울 지라도, 먼 훗날에는 “000과 함께 한 내 삶이 행복했다.”라는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축복한다.
* 위 글은 _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p. 226에서 발취하였으며, 나탈리 골드버그는 000을 “글쓰기”라 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