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1년~2년 살아보기 위해 왔다가 본격적으로 영주권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한국 회사를 정리한 지 4개월도 되지 않아 난처한 상황을 맞았더랬다. 진행되던 사업(!)도 엎어지고, 그 일에 합류하기 위해 회사를 관둔 남편도 곤경에 빠졌다. 유입되는 돈이 없다면 이곳에서 쓰기 위해 모아둔 돈도 얼마가지 않아 바닥이 날 게 뻔했다.
돈 때문에 걱정하거나 불안한 게 싫어서 대학졸업 전부터 쭉 직장생활을 해왔었는데, 40대나 되어서 생활비를 걱정할 상황이 되니 마음이 많이 편하지 않았다.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은 길일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조용히 살바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고 정보도 검색해 가면서 길을 모색하던 차였다.
사업을 하는 지인을 찾은 것, 그중 하나였다.
눈물이 터져서 우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면서 '울어서 부끄럽다', '미안하다' 등 기타 생각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자 우리와 내용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한 자신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끅끅'이 '흐흐흑'으로 바뀔 무렵,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눈물이 터진 포인트가 어딘지 짚어보았다.
'돈, 생활비가 아픈 단어라서?'
불편한 단어이긴 하지만 아픈 단어는 아니다.
"공감"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는 내 상황과 감정을 정중하게 공감해 주었다. 가볍거나 무겁지 않았고, 오버하거나 대면대면하지 않았다. 그 공감이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히며 눈물이 터진 거다.
공감보다 이해가 편한 사고형 부부. 표정 없는 공감(사실은 이해), 마른 위로와 격려, 앞서가는 해결사정신이 다툼의 씨앗이 되곤 했다.
지인들의 격한 공감이나 과한 위로, 말뿐인 격려도 가끔 불편해 마음속의 이야기는 진정되기 전에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안건'을 이야기하러 간 자리에서 뜻밖의 '공감', 그것도 정중한 공감을 받으니 새로웠다. 속없이, 주책스럽게, 부끄럽게 되어버렸지만 왠지 후련했다. 그간 혼자 앓아왔던 억울함, 분함, 황당함 등의 복잡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곪았다가 눈물 덕에 터져 나온 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