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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26. 2020

인생이란 축제


아침부터 푹푹 찐다. 밤새 이불을 다 걷어찼나보다. 침대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탁 털어서 개었다. 하. 진짜 덥다. 한 동안 장마철같이 비만 오더니 매일 찜통더위다.

오늘은 축제다. 정식 명칭은 <메주고리예 국제청년축제> 

21살 여름, 그때도 오늘처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 첫 주였다. 세계 각국 청소년들이 저마다 국기를 앞장 세워 줄지어 모였다. 언어도 인종도 달랐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췄다. 촛불 아래 모여 앉아 젊은 열정과 희망으로 기도했었다.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과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는 꼭 엄마와 동생이랑 이 축제에 함께 하고 싶었다. 꿈꿨다. 반드시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오래된 기도가 이루어졌다.






메주고리예 국제청년대회는 해마다 8월 초에 열린다.

올해 주제는 'That your love may grow'


'우리의 사랑이 풍부해지도록'


한국어가 반갑다!


야외벤치는 이미 만석, 잔디가 깔린 곳이며 맨바닥까지 인산인해다. 우리도 바닥깔개를 챙겨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아다녔다. 소성당 앞에는 매일 축제의 기록이 담긴 DVD며 기념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특별한 날, 축제 주제가 예쁘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하나씩 사서 입었다.


축제 기념 티셔츠 입고 야고보성당으로


원하는 기도 지향을 적는 행사도 열렸다. 수십 미터나 되는 커다란 하얀색 롤링페이퍼가 소성당 건너편 야외 잔디밭에 세워졌다. 순례객들은 저마다 펜을 들고 뭔가를 꾹꾹 눌러쓰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섰다가 야무지게 한 자리 차지하고선 쓰기 시작했다. 우리 소망들은 물론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순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계신 분들 그리고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들 이름까지 정성껏 썼다. 좀 있다 있을 국제 미사 시간에 야외 제대에 봉헌된다고 한다. 벌써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뭔지 모를 들뜸과 설렘에 행복했다. 야외벤치들을 뒤로하고 잔디 밭쪽으로 서둘러 걸었다. 다행히 보도블록에 걸터앉을 만한 자리가 있었다.


소망이 한 가득 적힌 롤링페이퍼


가방을 내려놓고 라디오와 이어폰을 준비했다. 한국어 주파수로 맞췄다. 야외 제대에선 오케스트라와 성가대 리허설 소리가 울려 나오고, 온통 설렘 가득한 순례객들의 웃음과 대화 소리는 메주고리예 곳곳에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축제에 참가한 97개국 국기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국제 미사를 시작으로 밤늦은 시각 마법처럼 열린 뮤지컬까지 종일 축제가 계속됐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개 하나 깔고 순례객들과 이야기 나누며, 누구 하나 노래를 시작하면 서로를 몰라도 함께 흥얼거리며 곡을 맞췄다.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신부님 선창에 따라 함께 기도를 바쳤다. 성서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안무가와 음악가의 작품으로 탄생한 뮤지컬도 봤다. 감동의 순간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노래하며 춤춰라 이 순간을 감사하며 즐겨라!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순례 온 청년, 몸이 불편한 친구와 함께 순례 온 청년, 지저분해진 곳곳을 청소하고 축제 프로그램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봉사자 청년들까지.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이 보여줬던 신앙심은 20대 때에도 물론 오늘까지 내게 충격이 될 만큼 그 믿음과 열정이 대단했다.


이만하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그래도 이만하면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보는 만큼, 들은 만큼 안다고 했던가.


세상은 다니면 다닐수록 넓고, 보면 볼수록 크다. 사람들은 만나면 만날수록 다양하고, 넓은 세상에 나오면 다양함의 폭은 넓어진다.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 인생은 점점 풍요로워진다.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남는다.


각자의 인생에 대축일이 있나요?


(*대축일이란. 그리스도 교회의 구원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비와 신심과 전통에 따라 예수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가 특별히 제정한 날이다.)


신부님께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날, 사제가 된 날 등이 신부님의 대축일이라고 하시며, 인생에 있어서 내가 새롭게 변화된 날, 터닝포인트가 된 날을 대축일로 삼아 스스로를 축하해주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엔 분명 대축일을 삼을 만한 날들이 있다.
쓰고, 달고, 밍밍한 날들로 뒤엉켜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사는 정신없는 삶이지만.


단 하루라도 우리 인생에 대축일이 있다면.
그래서 한 번쯤은 오늘 같이 오랜 소망을 이룬 날을 축하하며, 살면서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이란 축제


떠들썩한 흥겨운 노래와 재미있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눈물 나도록 아픈 이야기도 있다. 실수 연발, 실패 투성이인 삶에서 다시 일어서려고 애쓰는 열정과 용기 그리고 가슴이 찡한 감동도 있다.




밤늦도록 축제는 계속 된다
축제의 꽃 뮤지컬
식을 줄 모르는 축제의 열기


개최 이래 가장 더운 날씨(양지에선 51도, 음지에선 41도)였던 축제에는 97개국 6만 명이 참가했고, 14명의 대주교와 주교, 약 700명의 천주교 신부님들께서 참가했다. 인터넷으로 참가한 사람들은 전 세계 280만 명 이상이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오늘은 축제!


우리 세 모녀 대축일은 오늘이다


셀 수도 없는 인파들 속에 뜨거운 날만큼 아니 더 뜨거웠던 열정으로 함께 했던 오늘은 깜깜한 밤하늘에 별처럼 빛났던 대단히 멋진 축제였다. 기적처럼 세 모녀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차도록 감동이었고, 그저 감사 또 감사했다.

"엄마! 여기요 여기! 하나 둘 셋!(찰칵!)"



(2017년 8월 1-6일 동안 참여한 축제를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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