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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23. 2020

안나 마리아


멍멍, 낑낑, 머~~~ 엉 멍! 멍!
아침부터 강아지 짓는 소리에 잠을 깼다. 듣고 있으니 아무래도 집주인 강아지 같은데... 혼자 두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난리다. 덕분에 시끄러운(?) 아침을 맞이했다.



햇살 좋은 날 메주고리예 동네 공원



안나 마리아. 메주고리예에 머물고 있는 숙소 집주인이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덕분에 영어로 소통한다. 물론 우리는 아직 좀 어설프지만 크로아티아어는 아예 모르니 천만다행! 대학에 갓 입학한 딸이 있고, 남편은 이 곳 숙소 지하 1층에서 일한다.

처음엔 숙소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했다. 직접 조리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했고, 세탁기도 필수 조건이었다. 이 집이 딱이었다. 처음 안나 마리아와 주고받은 메일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실제로 만났을 때도 거의 비슷했다. 환영의 의미로 준 초콜릿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거실과 주방. 순례하면서 머물기 딱 좋았던 숙소
우리 자매가 썼던 방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도착하자마자 더운 날씨에 에어컨부터 틀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속품 하나가 덜컥 떨어졌다.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든 끼워보려 했지만 속수무책. 바로 메일을 보냈다. 지하 1층에 있던 남편이 올라왔다. 영어가 안 되는 남편은 다짜고짜 크로아티아어로 뭐라 뭐라 하더니 우리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 올린다. 당최 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안 되겠는지 전화로 안나 마리아를 바꿔줬다.


헉 근데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우리 보고 잘못 만진 거 아니냐며 뭐라 한다. 오 마이 갓. 우리는 당연히 '우린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숙소 와서 에어컨을 켰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라고 얘기했지만 기분이 나빴다. 뒤집어 씌우면서 손해배상하라고 할까 봐 불안했다.


그 사이 계속 에어컨을 만지고 있던 남편이 에어컨 안 쪽을 깊이 들여다보더니 어떤 부속품이 부러졌다며 고쳐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이다. 휴. 진짜 속상했다. 그래도 이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안나 마리아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메주고리예 우리집이 된 숙소. 일명 옐로우하우스.
문제가 됐던 에어컨 ㅠ




엄마는 어디를 가시든 숙소를 떠날 때 깨끗하게 정리를 하신다. 구석구석 청소까지는 아니어도 썼던 수건, 행주, 테이블보 등을 싹 걷어 세탁기 돌리고, 침대보와 이불도 걷어 돌돌 말아두고, 창문도 열고, 그릇들은 식기세척기에 넣어 두신다. (아니면 설거지를 해 두신다)

'엄마 어차피 우리 가면 청소할 건데 뭐하러 힘들게 하세요~그냥 대강 해 놓고 출발해요~'


'얘~그래도 우리가 한국사람인 거 아는데 더러워봐라~한국사람들은 더러운가 봐 그러면 어쩌니~이렇게라도 해 두고 가면 좋잖니~'


'어휴 엄마도 참...'

체크아웃할 때면 짐 챙기랴 출발 준비하랴 바쁘면서도 엄마를 도와 숙소를 정리하고 나왔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안나 마리아는 흔쾌히 직접 예약을 받아줬다. 심지어 안부까지 물으며 곧 보자고 하트까지 달아줬다. 엄마의 말씀이 옳았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머물렀다. 우리 집처럼.






나는 유독 추위를 많이 탄다. 여행 준비물 필수템은 당연 여행용 전기장판. 침대에 꼭 깔아야 잠을 잔다. 그러다 어느 날, 일이 났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했던가. 하.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진 것.


아무 것도 모르고 뜨끈하게 찜질하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있는 나(모니카) 하...ㅜ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때라 그렇게 춥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날따라 몸에 한기가 들었다. 전기장판 온도를 높이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숨이 갑갑했다. 눈을 뜨고 일어나고 싶은데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데 등 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침대를 봤는데 엄마야! 침대가 뻘겋게 타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엄마를 부르면서 창가로 기어갔다. 겨우 창문을 열고 엄마! 엄마! 지애야(루칠라)! 지애야! 맞은편에서 자고 있던 동생도 불렀다. 점점 기침이 심해지고 눈도 잘 안 떠졌다. 점점 몸도 못 움직였다. 뒤늦게 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우리 방으로 뛰어온 엄마는 내 침대에서 전기장판을 꺼내서 화장실로 달려가 욕조로 던졌다. 우리는 엄마가 주무시던 방으로 힘겹게 피했다.


홀라당 타 버린 매트커버. 매트리스는 구멍이 났다. 아찔했던 순간 ㅠ


숙소에 연기가 자욱했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가져온 전기장판이 오래전부터 쓰던 거라 여행할 때 부담 없이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돌돌 말아서 이동한 데다가 온도조절계가 고장 났는지 1단에도 뜨거웠었다. 워낙 추위를 타는지라 잠결에 침대 매트리스가 타 들어가는대도 모르고 잤던 거다.


불 끄고 환기시키고 한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숨이 좀 편안해졌다.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그랗게 구멍 난 침대 매트리스가 걱정됐다. 이걸 어쩌나.


매트리스는 동그랗게 바닥까지 타서 구멍이 뽕 뚫렸다 ㅠ


새로 매트리스를 사서 바꿔놓을까. 아니면 그냥 놓아야 하나.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제일 낫겠다고 결론지었다. 당장 안나 마리아한테 메일을 보냈다. 좀 있다가 답장이 왔다.

'다친 데는 없어요? 침대는 괜찮아요. 하느님께서 당신을 도왔어요. 모니카 말해줘서 고마워요..' (안나 마리아가)


휴...

온몸에 감돌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렸다. 거실에 앉아 안나 마리아가 보내온 메일을 읽는 내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숙소도 무사하고 게다가 안나 마리아의 너른 아량까지! 얼마나 눈물 나도록 고맙던지.


숙소에 햇살이 가득 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금 참고 넓은 마음으로 안길


엄마는 항상 이야기하신다. 사람은 살다 보면 서로 어떻게 도우며 살지 모르니 항상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내가 조금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참고, 넓은 마음으로 안고 가라고. 그러다 보면 내가 도움받을 일이 있고, 내가 다른 이를 도울 일이 있다고. 그러면서 사는 거라고.

안나 마리아와 우리는 서로 에어컨과 침대 사건을 하나씩 주고받으며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아는 장소에 숙소 열쇠를 둔다. 숙소비도 직접 주지 못할 경우 서로 놓고 가는 장소가 생겼다. 서로에 대한 작은 믿음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었달까. ㅎㅎ

(지금은 서로 코로나를 걱정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하트가 가득 담긴 메일로 주고받으며.)


베란다에서 마시는 모닝커피가 제일 좋다


거실에 나와보니 어쩐지 햇살이 좋아 보였다. 베란다에 서서 밖을 보니 오! 날이 맑았다. 기분이 좋았다.
안나 마리아가 숙소에서 볼일이 끝났는지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베란다에 서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차오(안녕)~안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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