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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Jul 21. 2020

위기탈출 파파!


이렇다 할 큰 일 없이 오늘도 여전 순례자의 흔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다 하루가 저무는 때, 집 앞 도로가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께서 우연히 한국인 신부님을 만난 신 것!(한국순례팀이 전부 빠져나가 거의 우리뿐이었다)


순례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대부분 성지순례는 여행사를 통해서 단체로 오기 때문에 자유여행을 하는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어렵다. 더구나 신부님은 더 그렇다.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길에 선 채로 신부님과 한참 대화를 나누셨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신부님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게 됐는데 그 사정은 이러했다.



세계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신부님들께서 순례를 오신다. 매일 오후 6시 국제미사를 드리기 위해 줄 선 신부님들 모습.



신부님은 몇 주 전 여행사를 통해서 단체로 오셨다가 혼자 남으셨다. 그리고 머무셨던 숙소에 짐을 몽땅 맡겨 두고 잠시 이탈리아에 다녀오셨다. 그런데 일정을 마치고 메주고리예에 돌아와 보니 짐을 맡겨 둔 숙소가 그만 문을 닫았다. 사정도 모른 채 오도 가도 못하고 길에 서 계시다가 우연히 성당에 저녁기도를 하러 가시던 엄마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짐도 못 찾고 별도로 예약해 둔 숙소도 없으셨던 신부님께 당장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선 제일 먼저 신부님 짐을 맡겨 둔 숙소의 주인과 연락이 가능한지 알아봐야 했다. 그러자니 우선 여행사와 먼저 연락이 닿아야 했는데 여쭈어보니 다행히 우리가 아는 여행사였다. 부랴부랴 저장해 둔 연락처를 찾아 연결해드렸다.


신부님은 한참을 통화하시더니 숙소의 주인이 휴가를 가서 잠시 닫았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그래서 오늘 밤은 어디서든 주무시고 내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상황인데, 늦은 시간에 갑자기 숙소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떻게 하나.


고민 끝에 안나 마리아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천만다행 바로 연결됐. 우리는 곧바로 신부님의 사정을 전했다. 그랬더니 안나 마리아가 흔쾌히 아파트에 있는 빈 방을 무료로 내어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와우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역시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더니, 엄마 말씀 따라 신뢰를 쌓아둔 일이 두고두고 옳았다)



매일 오후 6시 국제미사가 시작된다. 야외제대 순례객들.



우리는 안나 마리아 대신 신부님께 묵으실 방을 안내해드리고 내일 짐을 찾으러 함께 가보자고 말씀드렸다. 그제야 신부님께서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신부님과 함께 택시 한 대를 빌려서 짐을 찾으러 다녔다. 짐을 맡긴 숙소로, 숙소 주인의 친구 집으로 정신없이 이집저집을 다녔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신부님의 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시로 머무실 숙소도 마련하셨다. 휴.



메주고리예 햇살에 싱그러운 청포도


순례를 하다 보면=살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꼭 생긴다.



길을 잃었을 때, 숙소 예약이 갑자기 취소됐을 때, 기차에서 일행을 잃었을 때처럼 당황스럽고 아찔한 순간에 받는 도움이란.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우연히 만난 신부님을 돕게 되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받은 도움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왔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따뜻했다.



순례길에서 열일 후 마시는 텀블러 커피가 최고


신부님께는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벽에 공항 가는 택시를 예약해드리고, 계획된 일정이 취소돼서 수정된 일정을 조금 도와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잃어버리셔서 곤란한 일도 있으셨다! 그야말로 작고 큰 일들의 연속이었다. 

(신부님께서는 거의 1달 정도 머무르셨는데 신부님 숙소엔 세탁기도 주방도 공용시설이라 어려움이 있으셨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신부님께서 머무르시는 내내 식사와 빨래를 도와드렸다!)



순례동안 가끔 찾던 허브오일과 꿀, 밀랍초를 팔던 예쁜 가게



예측할 수 없어서 매 순간 긴장이 되고,
이런 긴장감이 설레어서 하는 여행이 아니던가!



고요하기만 했던 우리의 순례 여정, 우연히 길에서 만난 신부님 덕분에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노을지는 오후가 제일 기억에 남는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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