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만날 경비 아낀다고 경유만 타다가 처음으로 대한항공 직항을 구매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 몇 시간을 날아 밴쿠버 도착 2시간 전쯤 두 번째 기내식 먹으면서 드디어 마주할 첫 캐나다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는데 이게 무슨 일! 터뷸런스 때문에 거의 십여 년 수많은 비행기 탑승 이래 처음으로 비행기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이거구나 싶었다. 온몸이 자유자재로 떨리고 심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심하게 긴장될 때 꼭 쥐여주면 좋다는 네 번째 손가락을 부셔 저라 세게 쥐어도 한동안 소용이 없었다.
당장 생각난 건. 청심환. 승무원에게 요청했지만 없다고. 심장은 계속 요동치고 몸은 진정이 안되고. 안정제도 없냐고 했더니 없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승무원이 가져다준 뜨거운 레몬 물 한 입에 억지로라도 마인드컨트롤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안정 구간에 접어들면서 복도를 걸어 다니는 승무원만 봐도 안도감이 들었다. 무사 착륙 후 다리에 힘이 풀려 어찌 걸어 나가나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일단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붙었다.
16일 오후에 출발했는데 16일 오전에 도착한 엄청난 시차에 과거로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숙소에 우리가 들어갈 아파트가 채 준비가 안 됐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끌고 1층 도착층 카페테리아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숙소로 와도 된다는 메일에 벌떡 일어나 공항 밖을 나갔다. 차갑고 추운 날씨, 빙하가 녹은 물이 이럴까. 뭔지 모를 청량감이 드는 공기에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후욱 숨을 쉬었다.
공항 택시 타고 숙소에 도착. 타는 듯한 목마름에 브리타 정수기부터 꺼내서 씻고, 새 필터 갈아 끼우고 내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집에서 제일 먼저 챙겼던 전기장판을 꺼내 침대 위에 깔고 뜨끈해진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 눈 붙이고 일어나 햇반에 컵라면, 도시락김을 꺼내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개운하게 씻은 뒤 저녁기도로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얼마나 잤을까. 깨고 보니 벌써 다음 날 정오.
긴 여정에 독감으로 고생할까 출발 직후 맞은 독감 여파에, 터뷸런스로 온통 긴장한 탓인지 몸살이 제대로 났다. 다들 끙끙 거린다.
'그래 이참에 푹 자자.'
역시 처음은 쉽지 않다. 종일 비가 내리고 어둠 껌껌한 밖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분명 밴쿠버에 왔는데, 여기 캐나다 맞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