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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n 18. 2023

드디어 그날이 왔다

생각보다 개운하지 않았던 퇴사 당일 이야기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동안 마음속으로만 다짐하던 퇴사를 했다.

드디어!




솔직히 마지막에 맡은 일들이 좀 재미있어서 혼자 갈팡질팡했다.


반 달 정도의 휴가가 있던 터라 

문서상에 찍힐 내 퇴사 날짜보다 일찍 회사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단출한 종이 박스에 내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약간은 아쉬운 표정을 머금고

회사 밖으로 나가면 끝나는 줄 알았던 게

내 마음속 퇴사 그림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인사팀과의 퇴사 면담도 해야 했고

내가 쓰던 노트북을 포맷하고 반납해야 했다.

(다른 팀들은 포맷을 담당 부서에서 알아서 해준다는데

맥북을 우리 팀만 쓴다는 이유로 알아서 관리해야 했다)


퇴사 날 반차를 썼기에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돌아왔다.


자리에 왔는데 낯선 상자가 내 책상 위에 있었다.

작은 쪽지와 함께 마카롱이 든 상자였다.


잠깐 같이 일했던 다른 팀의 K 책임님이 놓고 가신 거였다.


이 회사를 다니는걸 불행처럼 느끼던 나와는 달리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던 그였다.


나는 그를 부러워하면서도 애잔하게 본 적이 있다.

'세상에 더 좋은 환경과 회사가 많은데, 

여기서 이렇게 행복을 느끼다니.' 하면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뭐라고 그의 행복을 평가했나 싶다.


조촐한 감동을 느끼고,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이때의 이 감정은 지금이 가장 생생할 것이기에.


섭섭보다는 시원하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가 너무 지루할 때 

아빠가 말한 플랜 B, C 도 준비해 보고,


이 회사의 문화가 너무 고리타분할 때

배민 북토크에서 '회사 문화가 맘에 들지 않으면

내 옆사람과의 문화부터 바꿔보라'는 것도 했지만


결국은 거대한 그룹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 말에 받은 상처가 낫지 않았나 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괜히 울컥한다.


어떤 말을 들어도 주위의 평가에 잘 흔들리지 않는 나인데,

많은 상황들이 자꾸만 그 말에 힘을 실어줘서 

회사 안의 내가 더 작아진 것 같다.


회사라는 곳은 바뀌기 힘든 곳이고

나는 그곳에서 상처를 받았고 불행을 느끼니 내가 떠나는 게 맞다.


뭐 결론은 퇴사날이니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입은 옷이 사원증 사진 찍을 때 입은 셔츠다.


뭐지 이런 완벽한 수미상관의 구조?

앞으로 백수의 나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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