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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Nov 06. 2021

외할머니가 인생 별거없다고 재미있게 살라고 했는데

전원주택에서 마흔 즈음에 깨닫는 것들에 대하여


사회 초년생 시절,  마음이 가까웠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삶의 끝자락을 간신히 쥐고 있는 상황의 외할머니를 뵈러 병원으로 갔던 , 외할머니가 저한테 그러셨죠.


인생 별거 없다. 재미있게 살아라.”


저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외할머니께 ‘할머니 힘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 라는 말은 차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때의 외할머니한테  그 고통을 좀 더 견디시라고   없었어요. 그저 서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명하게 다가올 이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병실을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커다란 대학병원의 건물이 냉장고 속처럼 춥게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삶에서 가장 슬펐던 누군가와의 마지막이었어요.


그렇게 외할머니는 떠났고,

그 이후의 저는 결혼을 하고 애도 둘 낳으며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그 외할머니의 부탁과도 같았던 유언은 여전히 저의 마음 속에 살아있답니다.


얼마전에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평균 나이 72,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이라는 부제가 딸려있는 책으로, 2015년부터 조선비즈에 연재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가장 인기있는 인터뷰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윤여정 배우가 할머니의 유언을 다시 상기시켜줬어요.


‘일하는 사람들과 재밌게 지내려고 많이 노력하시죠?’라는 질문에

‘맞아요. 살아 보니 인생이 별게 아니야. 재밌게 사는 게 제일이야.’라고 답을 했더라고요.


다른 유명한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에도 같은 말이 나와서 그 책을 읽을 때 우리 외할머니  중요한  알려주고 가셨네,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반짝,하고 할머니의 가르침이 되살아나 버렸습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유언을 하셨을 무렵에는

누군가의 죽음 자체도 생경하고

장례식의 문상 조차 낯선 이십대였어서 그 말 자체가 그저 막연하게만 느꼈는데,

나름의 인생 풍파를 겪고, 도시를 떠난 지금이 되니 

할머니의 마지막  자체가 굉장한 도를 깨우친 과도 같은 명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지금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한마디가 되었죠.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의 유언이 떠오른 김에, 그것과 함께 이제야 제대로 알아가는 인생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쩌다 무작정 전원주택에 살게 되면서 지난 도시의 삶과 지금의  자체가 완벽하게 달라졌어요.

삶의 패턴도 그렇지만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른 시각이 생겼죠.


아이의 난치성 질환을 이겨내며 현재까지의 삶에서 가장 밑바닥을 만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은 저에게 농담처럼 작년의 너와 올해의 너는 굉장히 다르다, 뭔가 도가  느낌이 든다고도 합니다. ( 늙었다는 말을 예쁘게 돌려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자연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마흔 즈음의 워킹맘이 깨달은 것들을 몇 가지 나눠 볼게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첫째 아이를 유치원 무렵 도시에서 키우는 동안에는 정말 작은 말에도 많이 흔들렸던  같아요.  교육관은 이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엄마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팔랑귀가 되어 버렸죠.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유치원이 좋다이제는 훌쩍 도시에서 떠나와  말들이 맞다고 해도 사교육을 시키러 도시로 다니기 힘들어졌어요. 그때는 취사선택을  해야하나 머리가 아팠는데 이제 사실 그럴 필요는 사라졌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아이의 인생도 시작단계라 뭐가 맞다고는 말할  없지만 확실한  가지는 알게 되었어요. 일단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최고다. 그리고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라는 것.


‘누구나 다 때가 있다.’

요즘 SNS에 재미있는 사진으로도 많이 돌아다니더라고요. 목욕탕에 써 있는 글귀, 때수건에 적힌 문구로 말이죠.

전원주택에 살면서 나무도 꽃도 자신의 때에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급해 하지 않고 저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어요. 오늘 자주 언급되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책에서 97세의 현역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60은 돼야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60에 어떻게 살까’는 40대에 정해야 해요. 지금은 다 떠났지만 내 동년배인 안병욱 교수, 김태길 교수, 김수환 추기경도 60~75세까지 가장 창의적이고 찬란한 시기를 보냈어요. 좋은 책은 모두 그 시기에 썼지요.’

저렇게 유명하고 대단하신 분들도 60~75세에 인생의 절정을 보냈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되죠. 언젠가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마흔 즈음에 조급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예요.


‘운이 좋아지고 싶다면 덕을 쌓아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해라.’

이 두가지는 모두 작년에 많이 느꼈던 것입니다.

아이의 난치성질환을 맞닥뜨리고 보니 제일 많이 든 생각은 ‘그동안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을까.’였습니다.

하늘을 원망하다가 원인을 엄마인 저에게서 기 시작했어요. 임신때부터  잘못했을까를 더듬어 찾다보니, 더이상은 안되겠더라고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괴롭혔으니까요.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부덕했다면, 이제라도 덕을 쌓아야겠다, 라고 말이예요.


예전에는 직장에서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들, 부당한 일들은 작은 일이라도 참고 넘기질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게 정의라고 생각했죠. 내가 나서는  다수를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저 스스로의 이미지도 나빠질  아니라, 제가 원하지 않는 결과로 번지는 일들도 많더군요.


아이가 아프고 나서 기도를 했습니다.

‘직장에서 최악의 상황들을 다 만나도 좋다. 최악을 다 저에게 보내달라. 대신 아이만 나아지게 해달라.’고요.

그런 기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더라고요. 그동안은 모두 제가 옳다고 악을 썼는데 말이에요. 제가 모두 틀렸대도 상관없다, 되니 자연히 겸손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지내니 작게 좋은 일들도 많이 생기고, 결국엔 아이도 확연히 건강해져서  감사해졌죠. 감사해지니  주변에 잘하게 되고, 그러면  연달아 작지만 좋은 일들이 생겨나더군요.


‘흙에 가까이 살 수록 건강해진다.’

도시에 살면서 깨끗하고 편리한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이후 많이 공부를 했더니 요즘 정말 여러 가지 자가면역질환이 있더라고요.  어릴 때는 들어본 적도 없는 병들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면역을 조금이라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진리에 가까운 말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막연하게 흙을 밟아야 건강해진다, 공기 좋은 곳에 살아야한다,  이야기를  귀로 흘려 보내기 일쑤였는데 일단 그것부터 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나서 2년이 지나는 동안 둘찌도 좋아졌지만, 3주에   편도염으로 고열이 나던 첫찌는  한번도 열이 나지 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건강해질 때가 되어서 건강해졌다고 하지만, 저는 자연의  덕분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어요. 깨끗하고, 편리한 것보다 조금 더럽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들이 건강에는 좋았던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괴로울 땐 멀리보지 말고 하루를 살자.’

제 이전 글들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작년에  괴로웠어요. 지나가는 평범한 둘찌 또래의 아이들만 봐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아이는  당연한 머리카락이 없을까, 하고  평범함을 부러워했적도 많았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괴로워졌습니다.  때의 둘찌가 막연하게 외롭고 힘들  같았거든요. 부모를 원망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졌죠. 그렇게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너무 괴롭고, 괴롭다가 결국엔 포기를 했어요.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살자,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같더군요.

그런데 정상이 까마득해 보이는 산을 오를 때도  걸음,  걸음  딛다보면 언젠간 결국 정상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이 마음에도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미리 걱정하지 않고, 하루씩, 하루씩, 살다보니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최악의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앞날은   없는 거겠지만 현재까지는 말이죠. 없는 걱정들이 많았던 거예요, 사실. 그래서 결국 깨달은  마음이 괴로울  멀리 보지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마음이 괴롭다면 주어진 일들을 버티듯  내며, 그냥  시간, 하루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상당히 많이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  여유가 생길 겁니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풍파가 찾아 오겠죠.

그래도 확실히 마흔 즈음이 되니, 조금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자연에서 뜨고 지는 해를 보면서,

깜깜한 하늘에 반짝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인생이 그렇게 나쁘지많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생기고요.

내가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믿음,

어제보다 지금의 내가 단 몇 cm, mm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자기 위안도 생깁니다.


힘들때는 나보다 앞서 삶을 살아간 인생의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도 귀울이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어제처럼 오늘의 발걸음도 내딛어 봅니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멀리에서 지금의 나를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외할머니의 유언처럼,

별거 없는 인생, 재미나게 살다 가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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