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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Oct 23. 2021

폴킴 찬란한 계절과 전원주택에서의 ‘찬란한 계절’

전원주택에서의 찬란한 늦가을

요즘 폴킴의 ‘찬란한 계절’에 빠져 있습니다.


원래도 좋아하는 가수라 신곡을 찾아 듣곤 하는데, 이번 곡도 역시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곡은 특히, 가사가 압권입니다.


곡 소개를 보니,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여름 같은 사람을 가을에 와서 떠올리고 후회하는 노래’라고 하는데요.


시작하는 가사가 이렇습니다.


비가 내리는 반대편으로

여름을 향해 달리네

내게로 내미는 어떤 것도

끝내 붙잡지 못하고 말았네

피는 것보다 지는 게 더 많아서

찬란한 계절의 너는

어설픈 나의 맘에

차게 기울었지

-폴킴 ‘찬란한 계절중에서




그런데,

피는 것보다
지는 게 더 많아서
찬란한 계절,
이라네요.



찬란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1.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이다.

2.빛깔이나 모양따위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더 찬란한 계절에 가까울 텐데, 이 노래에선 지는 게 더 많은 이 계절을 찬란하다고 표현하고 있네요.


이상하게 느껴져요.

모든 것이 지고 있는 지금이 찬란한  계절이라니.


작사가의 의도를 더 알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찾아보려고요.

지금이 왜 찬란한 계절인가.






오랜만에 아무 일정없는 주말입니다.


 찬란한 계절을 느껴보러 아이들과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동네 산책이라 아이들이 들뜨기 시작했어요.

마을 어귀에 수확해놓은 콩이 보이는 늦가을입니다.


얼마간 걸어가는데, 벼를 베고 있어요.

벼를 수확하는 모습을 저는 처음 봐요. 아이들과 콤바인이 지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들도 신기해했지만, 나이들어 처음으로 시골에 살게 된 저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이미 수확이 끝낸 논에 떨어져 있는 낟알들을 발견하고 소중히 모은 첫찌.

‘멋지다. 이따가 껍찔을 벗겨 먹어보자.’,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합니다.



조금 더 멀리 걸어보는데, 둘찌가 따갑다며 멈춰서서 보니까 바지에 도깨비 바늘 씨앗이 잔뜩 붙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벼를 수확하고

도깨비 바늘의 씨앗도 멀리 퍼져나가는 그런 계절이네요.

풀밭에서 민들레를 발견해서 씨도 후, 불어보았습니다. 저 어릴 때도 그랬는데,  여전히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민들레 씨 불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도에 누가 일부러 흘린 듯이 잔뜩 뭐가 뿌려져 있어요. 키를 낮춰 자세히 살펴보니 코스모스 씨앗이네요. 그러고 보니 앞에 코스모스가 있었습니다. 큰찌가 집에 심어보자며 몇 개 주워서 소중히 지갑에 담았습니다.


민들레도,

코스모스도 씨앗을 퍼뜨리는

그런 찬란한 계절이네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정원을 정리했습니다.


메리골드와 백일홍, 천일홍, 코스모스가 안녕을 고하고 있더라고요.


워킹맘으로 살며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초보 정원가는 역시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이미 져버린 꽃을 뒤늦게 뽑아내며 휑한 꽃밭을 한참 바라보았어요. 막 피어나려는 꽃을 기대하며 씨앗과 모종을 심는 일이 중요하듯이 내년을 위해 마른 꽃들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또 계절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화는 이제 막, 절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흰색 폼폼국화 심어 두고, 이렇게 만개할 때까지 못 봤네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이번에도 놓칠 뻔 했습니다.


조금만 더 게으름을 부렸더라면,

국화가 다 진 뒤에야

그 절정을 놓치고 말았다고,

후회를 하고 있었겠죠.


다행이 나의 가을 정원을 정리하며,

국화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다행이예요.






요즘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벚나무 낙엽이 마당에 쌓이고,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것을 바라보며

산에 녹색이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고,

꽃밭이 휑해지는 걸 안타까워했어요.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는 것이 힘들어지는 계절,

뜨거운 물을 끄고 옷을 입을 때까지가 괴로워 샤워 시간이 길어지는 계절,

옷이 두꺼워져서 불편해지는 것 만큼이나

초록초록 싱그러움이 사라지고 온통 잿빛으로 보여지는 이 계절을 저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폴킴의 노래를 듣다가,

전원주택에서 아무 일정없는 주말을 보내다가,

아이들과 동네 산책을 하다가,


그만,


이 늦가을이 좋아지고 말았어요.




피는 것보다 지는 게 더 많은 찬란한 계절.



안녕하는 것은 늘 그렇듯 아쉬움을 남기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잠드는 겨울이 오기 전에

짧은 이 계절을 더 느껴봐야겠습니다.


아직 돌틈 채송화 꽃에 나비가 날아다니고,

정원의 국화는 절정을 막, 지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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