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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Oct 14. 2021

나, 오늘 생일이야.

전원주택, 소소한 가든 파티의 기억들


어느덧 또 생일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전엔 생일이 오기 아주 오래전부터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던 것 같은데,

마흔을 목전에 두고있는 나이가 되니까 확실히 그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생일이 평일이라 출근을 해야하는데,

밤에 자려고 함께 누운 큰찌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는 좋겠다. 생일에 출근을 해서. 내 생일은 방학인데.”

(큰찌의 생일은 1월인데, 큰찌의 학교는 올해 12월 말에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계획이 세워져 있습니다.)

“엄마는 출근을 해도 사람들한테 생일이라고 말을 할 게 아니라서…”

그렇게 말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제부터 내 생일을 나 부터 별다르지 않는 날이라고 규정해 버렸나, 하는 생각이 말입니다.


어릴 때는 생일날 누군가 물어보기 전부터도 이미 방방 떠버린 기분을 숨기기가 어려웠는데 말이예요.

누군가가 오늘, 이라고만 말을 시작해도, ‘응. 오늘 내 생일이야!’ 라며 비밀을 털어놓듯 말해버리던 그 날들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죠.


대학교시절만 하더라도 12시 땡하면, 여러 축하 문자가 날아드는 것을 즐기고,

생일날 술집에서 여러 사람하고 왁자지껄 떠들며 그 날을 기념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득한 기억이 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생일날도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 두 아이를 챙기다가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아, 오늘 생일이었지.’하는 그런 일상들을 보내게 된 것 같아요.(아이들이랑 함께 뻗어 잠들어 다음 날 아침에서야 어제 생일이었지,하지 않으면 다행인 느낌도 있고요.)


챙겨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곁에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참 고맙지만, 내 생일을 기다리고 그 24시간을 온전히 행복해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내 스스로 생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자체가 덤덤하다가도 문득 슬프고,

슬프다가도 이내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 같아요.

그게 인생이고 삶, 이려나요.




그럼, 작년에는 뭘 했더라?


문득, 작년의 생일을 떠올려 봅니다.

작년에는 고맙게도 생일 즈음, 친한 친구 부부가 놀러와서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해 주었어요.

어떻게 숨겨 왔는지(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케이크를 몰래 숨겨 들어와서는 마당에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초에 불을 붙인 케이크를 친구가 들고 나왔지 뭐예요.

그 순간, 정말 오랜만에 울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둘찌의 우유, 계란 알러지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저를 위한 생일 케이크도 사지 않았거든요. 굳이 둘찌도 못 먹는 걸 사서 먹지도 못할 아이를 놀리듯 꺼내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저를 위해 맞춤 떡케이크까지 주문할 만한 열정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랜만에 생일축하 노래를 듣고 초를 후, 불며 예전의 온전한 나만을 위한 생일파티 기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 전에 나만을 위해 살던 시절의 기억이 말이죠.



근데, 그러고 보니 작년의 벅찬 생일파티를 보냈던

그 마당에서 작년과 올해 많은 파티가 이루어졌었네요.


먼저, 가족들의 생일파티.

특히 아이들의 생일날, 헬륨풍선들을 마당에 장식하니까 영화에서만 보던 서양의 가든파티, 딱 그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으로 해본 작년 할로윈파티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코스튬을 입고, 마당의 테이블과 식기도 할로윈 느낌으로 준비했었어요. 그 때도 할로윈 느낌의 풍선 세트가 빛을 발했었죠.


마당에서의 가든파티가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소소하게 우리끼리만 있었어도

더 기분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아요.



돌아오는 제 생일에도
마당에서 가족들과
밥 한끼를 먹을 예정입니다.


아이들의 생일처럼

특별하게 풍선과 케이크를 준비하지는 않겠지만,

이 좋은 가을날, 마당에서 가족들과 한끼 밥을 나눠 먹으며 아이들이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싶습니다.

작년에는 남편이 바베큐 솜씨를 뽐내어 안심스테이크와 양갈비를 구워줬었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게 우리집 마당에서의 파티,

그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파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참 따뜻한 기분이 들어요.


저는 지금까지 이사를 많이 다녔던 터라, 한 동네, 한 집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들이 참 부러웠었거든요. 나이가 들어갈 수록 유년시절, 오래 살았던 집의 추억만큼 큰 힘을 가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결혼 이후에도 십년 남짓한 기간동안 다섯번은 이사를 다녔는데, 이 집을 마지막으로 꽤 오랫동안은 멈출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듭니다. 이제야 진짜 우리집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이 집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이런 추억들을 나중에 꺼내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 열어볼 마법 상자처럼 말이예요. 아주 오랜뒤에라도 집안 곳곳에 남아있을 즐거운 기억들이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추억으로 힘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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