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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Oct 05. 2021

나의 번아웃 극복기

전원주택에서 머릿속을 일시정지 하는 몇가지 방법


정말, 정신없는 가을을 보내고 있어요.


직장에서의 투두리스트도 많지만, 집 안의 일도 많아졌어요.

추석같은 명절과 저희집 생일들이 여럿 모여있는 10월은 마음도 바쁘고, 갑자기 가족들이 크고 작게 병원  겨버렸거든요.

남편은 미루고 미루던 치과 진료를 이젠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열심히 트램폴린을 타던 둘찌는 무릎에 실금이 간 것으로 추정되어 정형외과에, 저는 갑자기 결막염이 심해져서 안과를 가게 되었답니다.


이것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 일 아니지만,

직장에서 해야할 일이 밀려있고, 안팎으로 크고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하다보니 어느새 번아웃에 이르게   같습니다.


갑자기, 이쯤에서 번아웃이라고 나가떨어진 건 아닌데

짜증이 많아지고 체력은 떨어지고, 인터넷에 떠도는 번아웃 테스트를 해보니 거의  체크를 하고 있더라고요.


출퇴근길 머릿속에 뱅뱅도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새 여기에 도착했는지   없을 정도로 기계적인 운전을 하고 기도 했습니다.




이제 잠시 멈춰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아무도 나를 멈춰주진 않습니다.

내가 멈추고 주변을 둘러 보아야 할 시간이 된 거죠.


사실, 전원주택에 산다고 매일같이 마당을 즐기지는 못해요.

퇴근해서 정신없이   먹고, 아이들 챙기다보면 어느새 밤이 되기 일쑤거든요.


주말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오늘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결심을 야 합니다.






잠시 바쁜 일상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한다면 

무조건 마당행이 정답입니다.


커피   들고나가 하늘멍, 풀멍, 꽃멍을 하는 시간을 가져요.


해먹에 누워서 하늘멍을 하는 건 정말 릴랙스가 되는 일입니다.

곁으로 폴짝 올라오는 마당냥이가 있다면 더더욱요.



요즘 제일 좋아하는 저의 가을 정원을 살펴 봐요.

이제 정말 만발을 했더라고요.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 아름다운 가을 정원의 시기를 놓칠  했습니다.

뒤에 병풍처럼 둘러 씨앗을 뿌려놓은 황하 코스모스와 겹코스모스,  앞의 천일홍,  앞의 아스타가 정말 절정이예요.


이렇게 잠시 꽃멍에 빠져 봅니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얼마전까지 풀로만 보이던 국화가 꽃망울을 잔뜩 맺고 있더라고요.

저렇게 막, 피어나려고 하는 순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스모스가 피고, 아스타가 절정을 이루다가, 이제는 국화의 시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시기가 있는 건데 말이죠. 괜시리 재촉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멈추고 꽃을 보다보면 정신을 좀 차릴 수가 있어요.

 꽃망울이  시기,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시기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믿으며, 조금 기다려보기로 해요.






낮에도 힐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밤의 힐링시간을 가지면 됩니다.

 가을 가장  힐링 시간은 불멍이예요.

시원한 공기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과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이보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등은 시원하고 앞은 따뜻하고요. 정말 불멍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근데,
만약 불멍으로도 치료가 안되는 
번아웃이라면?



이젠 다른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하러 나가는  밖에는!



머리 어지러울 때 제일 좋은 건 역시 몸 움직이기!

그럴  전원주택에서 제일 좋은 잡초뽑기입니다.

정신이 번아웃이 되는 동안 돌틈 잡초가 많이 자랐어요.

정신이 바빠지는 동안 오히려 몸은 게을러지기 쉽거든요. 몸을 바삐 움직이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잘 정리가 됩니다.

어릴  흔하게 가지고 놀던 강아지풀이 가장  번지는 잡초 중에 하나인  전원주택에 이사오고 나서야 알았어요.

오늘은 강아지풀, 쇠뜨기를 포함한 잡초를 최대한 많이 제거하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장갑을 낍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전장에 나가듯 걸어나갑니다.


그리고 얼마후,

정신없이 노동요를 틀어놓고 일을 하다보니, 수북히 쌓여 있는 잡초들. 잡아 뽑는 동작 때문에  마디와 손끝이 아픈  보니 생각보다 오래 한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잡초에 손을 뽑다가 어깨도 잠깐 삐끗한  있죠.

그 때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 만 더, 저거 하나만 더, 그렇게 욕심을 해서 어깨를 삐끗했구나.

과욕은 언제, 어디에서나 금물입니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며 전원주택의 자연에서 번아웃을 극복해 보았습니다.

완전히 극복한  아니지만, 잠시 머릿속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시간이었습니다.


하늘멍, 불멍, 꽃멍하며 쉬어 보기도 하고

풀냄새 맡으며 잡초 제거 노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는 대신 머릿속을 비워 보기도 했어요.

 

피어나는 국화를 보며 나의 시기를 기다리자는 생각,

잡초 뽑기를 하다가 하나만 , 하는 욕심을 버리자는 생각을 하기도 한 좋은 시간이었어요.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 시간동안 최대치를 뽑아내고자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들게 되지만, 우리의 체력과 마음도 한정되어 있으니까 말이예요.

무언가를 신경 쓰면 반드시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생기게 되는 것은 자연의 리와도 같죠.


투두리스트만 신경쓰지말고,

버킷리스트도 신경쓰는 가을을 보내봐야겠습니다.


할 일도 해야할 일도 많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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