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5월 02

by 릴리포레relifore

“날씨 진짜 좋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는데 절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파란 하늘에 따뜻한 햇살. 심지어 토요일! 이럴 때는 야외로 나가줘야 맞는 건데. 현실은... 지도안을 짜야해서 어디도 못 나가는 상황.

“아~ 진짜 싫다.”
나는 자고 일어나 이미 헝클어져 있는 머리칼에 두 손을 넣어 정신없이 문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풀썩 주저 앉았다.

“진짜 지도안 짜기 싫다. 놀고 싶다!”

그렇게 외쳐보아야 나 혼자만 듣는 소리였다. 그런 마음 따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자. 공개수업 잘 해서 학부모의 신뢰를 얻어야해. 절호의 기회로 만들자. 나는 아자 아자,라고 외치며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가방에서 지도서와 교과서를 꺼내 모니터 앞에 주욱 펼쳐 놓았다.

“어디보자. 내가 할 단원이...”

손가락으로 지도서를 빨리 넘기기 시작한다.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며 지도안을 짠다. 학습목표를 쓰고, 그 학습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활동을 세 개 짠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교사발언을 적어 넣기 시작한다. 지도안은 토크쇼 진행자들의 대본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교사 발언과 행동을 세부적으로 짜고, 그에 따른 아이들의 반응 역시 추측해서 적어야 한다. 물론, 혼자 하는 원맨쇼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잘 이끌어가는 것이 포인트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지? 그럼 이제 학습지를 좀 만들어 볼까.”


대충 지도안을 1차적으로 짜서 저장버튼을 누르고, 교사들만 갈 수 있는 커뮤니티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올려둔 지도안과 학습 자료들을 참고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나와 다른 활동이라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 남들 많이 하는 단원을 했으면 편했을 건데... 이미 다 짠 거라 다시 엎을 수도 없고. 할 수 없지. 열심히 혼자 머리 터지게 만들어 보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판을 두드리다가 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열시네. 8시부터 시작 했으니 벌써 두 시간이나 일을 했다. 장하다, 나누리. 그럼 잠깐 쉬어볼까? 재빠르게 인터넷을 열어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대충 여러 기사들을 읽는데 ‘박스 오피스 1위 달성!’ 그런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다. 뭐에 홀린 듯 클릭을 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리즈 다 봤는데... 이것도 되게 재밌나 보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관련 기사들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가까운 영화관의 상영시간표까지 찾고 말았다. 다행히 30분 뒤면 시작하는 영화표가 있었다. 이게 다행인 게 맞는 건가? 어쨌든 지금까지 열심히 했는데 잠깐 나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올까, 라는 제안을 나 스스로에게 해본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또 다른 자아는 일사천리로 영화를 예매하고 집을 나섰다.


영화관에 도착해서는 팝콘과 콜라까지 사고 말았다. 간단하게 빨리 보고 집에 가서 일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또 제대로 먹을 것 까지 사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왕 볼 거 제대로 봐야지! 혼자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이며 영화관 입장을 서둘렀다. 이미 광고가 시작된 영화관 안에 내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팔걸이에 콜라를 끼워두고 팝콘을 집어 먹으며 광고를 보는데 내 앞으로 익숙한 두 사람의 뒷모습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저건? 둘이 대화를 하며 자리를 찾아 앉는 두 사람은 바로 수진쌤과 이쌤이 아닌가? 둘은 내 자리에서 세 줄 앞에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을 활용해서 열심히 살펴보니 진짜 이쌤과 수진쌤이었다. 둘은 뒷 자리의 나를 볼 생각도 안하는데 나는 괜히 몸을 낮춰 앉은키를 줄이고 있었다. 뭐지? 둘 다 이 영화 좋아하나? 왜 하필 둘이 영화를 보러 오지? 둘 다 지도안은 안 짜나? 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수진쌤 주말엔 지도안 짠다고 했으면서. 소개팅도 하고 바쁘지 않나? 왜 이쌤이랑 같이 보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흩어지는 생각의 끝에 수진쌤의 원망까지 들어왔다. 나 지금 누굴 원망하고 있는 거니. 진짜... 혼자 허탈해하는 것으로 생각을 마무리 짓고 있을 때쯤 영화가 시작되었다. 일단 모든 잡 생각을 물리치고 영화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 이 시리즈 진짜 좋아하는 건데...

영화의 엔딩 후에 자막이 올라갈 때쯤 후회가 밀려들었다. 결국 두 사람을 신경쓰느라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영화를 보러 온 것도 기분이 나쁜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지 못했다는 것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졌다. 두 사람은 이제 일어나 영화관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둘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둘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갔고, 그제야 나도 비틀거리며 일어서 영화관을 나가기 시작했다.


“웬 비?”

그 둘의 조금 뒤에서 스토커처럼 따라가고 있는데 1층 출입구 앞에 멈춰선 수진쌤이 입을 열었다. 나도 멈춰서 투명한 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 까지만 해도 햇살이 그렇게 내리쬐더니... 그러고 보니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던 것 같다. 내리는 비를 보자 더 우울해졌다.

“우산 가져왔어? 오올~”

수진쌤의 칭찬섞인 멘트와 함께 이쌤이 우산을 펼치고, 그 둘은 함께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둘이 영화를 보러 온 것도 충격적인데 한 우산을 같이 쓰고 걸어간다니. 게다가 난 지금 우산도 없는데... 복합적으로 화가 나서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다.


비를 맞고 뛰어서 집에 갈까 하다가 누군가 눈에 띄게 될까봐 걱정이 된 나는 근처 가게에 들러 투명 우산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우산을 쓰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이나 열심히 할 걸. 괜히 영화는 보러 와서는, 하고 나를 자책하다 이쌤을 책망했고 결국 그 책임은 수진쌤에게 떠 넘겨졌다. 이쌤한테 관심 없다고 했던 이야기며, 이번 주말에 지도안으로 바쁘다는 이야기까지 수진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바쁜 사람이 어떻게 영화는 보러 올 수 있어? 나는 똑같은 처지에 영화를 봤던 내 자신의 모습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수진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까워 올수록 비는 더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한 우산 속에 있을까? 또 다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나 진짜 왜 이러니. 누가보면 이쌤 여자친구인 줄 알겠다.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콩, 쥐어 박았다. 정신 차려. 지금 해야할 일이 엄청...


“여보세요?”

쓸데 없는 상념의 구렁텅이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전화벨이 구했다. 그렇지만 통화가 끊어질 쯤엔 다른 생각의 구멍으로 빠지고 말았다. 나는 방금 전 통화를 곱씹으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전화의 발신자는 학부모였고, 통화의 내용은 왕따에 대한 항의 전화였다. 전화는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저희 애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저희 애는 혜민이었다. 저번 도난 사건에 피해자였던 혜민이. 평소에 혜민이는 말 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여자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축에 속했다.

‘반에서 가장 드센 민정이랑 말다툼을 했나봐요. 그리고 나서는 지난 주부터 같이 놀던 소정이도 같이 안 놀아준다고... 아우 울고 불고 난리였어요. 주말 지나고 학교 가기 싫다고 방에 틀어박혀서 울기만 하네요.’


혜민이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월요일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잘 나눠보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통화 내용을 곱씹으며 현관문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다. 삐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산을 한 쪽에 놓아두고 신발을 벗었다. 비가 와서 쌀쌀한 밖과는 달리 집 안은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일단 커피나 한 잔 마시자는 생각이 들어 캡슐 커피머신을 작동시켰다. 어딘지 씁쓸하지만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향이 훈훈한 공기를 타고 집 안 이곳 저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머릿 속이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머릿 속으로 먼저 해야할 일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이쌤과 수진쌤 생각하며 미워하기는 머릿 속 지우개로 빡빡 지웠다. ‘1. 지도안 짜기, 2. 아이들 상담 관련 자료 만들기’ 이것만 해도 이번 주말은 꽉 차게 쓸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지도안 짜기만 해도 벅찬 상황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갑자기 불어나 해야할 일 리스트가 가득 채워졌다. 혜민이는 민정이랑 왜 다퉜을까. 상관없는 소정이는 왜 민정이 편에 섰을까. 또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고학년은 여자아이들 관계 문제가 제일 힘들다던 수진쌤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수진쌤과 이쌤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악~”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해야할 일 리스트에서 간신히 뺐던 두 사람의 생각이 다시 떠올라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요즘은 늘 생각이 버거운 상태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이 포화상태다. 오른손이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다.

“앗, 뜨거 뜨거!”

입 천장이 홀랑 데인 느낌. 나는 서둘러 잔을 내려놓는다. 커피마저 나를 화나게 하다니! 후, 하고 깊게 한숨을 뱉어 본다. ‘이너피스’가 시급한 상황이다. 마음속으로 이너 피스,를 읊조리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먼저 끄자. 그리고 나서 머리가 터지게 다시 생각해보자. 지도서를 넘기는 손길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 매일 듣는 아침 라디오를 틀어 놓고 출근 준비를 했고, 학교에 일찍 나와 일과를 시작했다. 다행히 이쌤과 수진쌤은 아침에 마주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문제에 온 마음을 쓸 수 있었다. 내 잡생각은 다 밀어두고 혜민이를 온전히 관찰했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혜민이와 소정이, 민정이의 상태를 수업과 쉬는 시간, 이동 시간 등 모든 상황에서 힐끔거렸다. 혜민이의 어머니 말대로 혜민이가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세 명에게 하교 후 남으라는 통보를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세 명의 여자 아이가 앉아 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해봐.”

벌써 세 번째 같은 말을 나 혼자 뱉고 있다.

“말 안 할 거야?”

다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구고 앉아만 있다. 내 입에서 긴 한숨이 빠져 나왔다.

“그럼 적자.”

나는 A4용지를 찾아 아이들에게 한 장씩 건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적어 오라고 했다. 아이들이 조용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연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십분쯤 지났을 때 아이들의 종이가 내 손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읽어 보고 다시 이야기 하자.”

아이들을 내 앞에 앉힌 채 나는 A4 용지에 적혀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 장의 종이를 읽으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건 왕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티채팅이라니!’


결국 간추린 내용은 이랬다. 평소 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민정이가 나의 안티 채팅방을 만들었고,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이의를 제기한 혜민이가 그 사이에서 왕따의 타겟이 된 것이었다. 왕따가 사실이었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내 안티 채팅방이라니. 정말 기절할 노릇이었다. 앞에 앉아 땅만 바라보고 있는 이 세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내 욕이 오갔다는 채팅창을 생각하니 교사로서 간신히 붙잡고 있던 평정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내 앞에 닥친 현실을 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내 욕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신고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그걸 지도해야 되는 위치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선생님은 두 가지를 너희들과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 첫 번째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혜민이랑 다툰 문제고 두 번째는 선생님 안티 채팅방을 만들었다는 사실이야.”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혜민이랑 다툰 문제만 가지고 이야기를 좀 해보자. 민정이부터 혜민이와 왜 다투었는 지 이야기 좀 해 볼래. 적어서 선생님한테 냈으니 아까보단 이야기하기 쉽겠지.”


내 말이 끝나고 일분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민정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민정이 말이 끝나자마자 혜민이는 민정이가 오해를 한 것 같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더니 민정이가 울고, 혜민이가 우는 것으로 생각보다 쉽게 화해 무드가 잡혔다. 듣고 있던 소정이도 민정이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셋은 앞으로 친하게 지내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내가 들어봐도 별 것 아닌 내용이었다. 얘가 저보다 쟤랑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이런 내용이 발단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민정이가 나의 안티채팅방을 만들었고 혜민이가 그것을 비판하는 말을 하자 이미 오해가 있던 민정이가 화가 났고, 소정이도 민정이의 말을 듣고 혜민이를 미워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뒤 셋은 부둥켜 안고 친하게 지내자, 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 친구를 오해해서 미워하면 되겠니? 오늘 오해를 풀었으니 앞으로는 사이좋게 지내.”

나는 청소년드라마의 교사처럼 훈훈한 조언을 하는 것으로 지도를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드라마였다면 그 모습을 교사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겠지. 그렇지만 현실 속의 나에겐 아직 풀어야 할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나의 안티 채팅방 문제가 그것이었다. 누군가의 안티 채팅방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도해야 하는 문제인데, 그 미움의 대상이 심지어 담임 교사였다. 솔직히 대상이 나라서 더 화가 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대상이 나라서 지도하기가 애매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잘못 꺼내면 저 선생이 자기 욕을 해서 화가 나서 저러는 구나, 라고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 될 것이기에. 나는 셋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훈훈한 모습을 좀 더 지켜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그 채팅방 캡쳐해서 선생님 폰으로 전송해줄래?”

“저는 채팅방 금방나오고 삭제해 버렸어요.”

내 말이 끝나자 마자 혜민이가 대답했다.

“다른 두 명은 아직 그 채팅방에 있지? 그럼 소정이랑 민정이는 선생님한테 보내줘.”


소정이와 민정이가 힘겹게 네, 하고 대답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내 휴대폰 메시지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캡쳐한 화면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한 페이지씩 보기 시작했다.

‘오늘 담임 옷 진짜 이상하게 입지 않았냐?’

‘칠판 글씨 진짜 못 쓴다.’

‘정석쌤 지나가는데 엄청 쳐다보더라. 재수없게. 꼬리치나봐.’

‘완전 화장발.’

몇 페이지 보지도 않았는데 쉴 새 없이 내 욕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화면을 올리던 오른손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똑똑.

정적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이쌤이었다. 이쌤의 얼굴을 보자마자 방금 봤던 채팅방의 대화글이 떠올랐다. ‘재수없게. 꼬리치나봐.’ 채팅방 화면이 이쌤 얼굴에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욕을 한 거 겠지만 나는 내 마음을 아이들한테도 들킨 것 같아 창피했다. 화도 나고, 창피한 상황에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니 눈물이 금세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흠흠. 나 선생님. 지도안 제출 6학년만 안했다고... 지나가다 연구부장님을 만나서...”

내 표정을 살폈는지 이쌤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 네. 바로 내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이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들과 내 얼굴을 한 번씩 살펴보고 교실을 나갔다. 지금은 지도안을 수합해서 제출해야 되는 것이 급한 일인 것 같다.


“너희들 학원 가야되지?”

“네.”

세 명 모두 학원 시간에 늦어간다며 다급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일 이야기를 더 하자고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손에 잡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켰다. 학교 메신저의 메시지가 족히 열 개는 와 있었다. 나는 서둘러 메신저 속 연구부장님의 아이콘을 더블 클릭해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첨부 파일로 6학년 선생님들이 보내준 지도안을 넣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곧 연구부장님한테 잘 받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나서 나는 남은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교무수첩에 적어 넣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어서 일단 교무수첩을 덮었다.


이제부터 뭘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나는 캡쳐된 내 안티 채팅방 화면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채팅에 참여한 인원은 총 여섯. 나에 대한 욕은 연예인 악성 댓글처럼 무수히 많았고, 싫어하는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채팅창 안의 나는 옷차림, 말투, 글씨, 화장한 얼굴까지 무차별적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솔직히 화가 났다. 내가 뭘 잘못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맡은 아이들이라 더욱 각별하게 신경을 썼었는데. 많이 사랑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상하다. 그냥 속상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모니터 옆에 놓인 휴지를 뜯어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후-, 하고 떨리는 긴 한숨을 뱉어냈다. 울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진 느낌이었다. 이제 속상한 것은 뒤로하고 지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기분 나쁜 악성 댓글들을 고소하는 연예인이 될 수 없다. 나는 교사니까 내 마음은 접어두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지도를 해야 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은 화가 나고, 아이들이 미웠지만 그 마음을 내색할 수 조차 없었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아이들을 일일이 붙잡고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까. 아니면 나쁜 행동을 했으니 반성문을 써, 라고 화를 내야 할까. 어쩌면 여기에 가담한 아이들이 나에게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닐까. 나는 의도한 적이 없지만 알게 모르게 작은 상처라도 받은 아이들이 모여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은 계속 부풀려져 자책으로 이어진다. 평소라면 이럴 때 수진쌤을 찾았겠지? 그 생각에 다다르니 슬퍼지고, 우울해졌다. 아이들한테는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지금 오해일지도 모를 수진쌤을 미워하고 있다.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 잘못하고 있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별 것 아닌 일로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교사라니. 나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우울함이 찾아오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선생!”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미안. 급해서 노크를 한다는 걸 잊었...”

이쌤이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휴지로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이미 운 것은 들켰겠지. 창피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눈을 피했다.


“무슨 일 있어?”

이쌤이 문을 닫으며 물었다. 어딘가 오늘은 평소와 다른 따뜻한 말투다. 단지 질문이었을텐데 위로의 말처럼 들려 참고 있던 눈물이 폭발해버렸다. 떨리는 목소리가 마구 흔들리며 입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이... 제 안티... 채... 채팅방을 만들어서... 아까... 봤는데...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두서없는 말들이 생각과는 다르게 마구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흐느끼는 모양새로 숨을 내쉬었다. 이쌤은 지금 내가 얼마나 웃길까. 난 왜 대충 얼버무리지 못하고 사실대로 털어놓은 걸까. 이미 일을 저질러버리고 찾아온 뒤늦은 후회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분명 객관적 입장에서 대답할 거야. 그 말에 난 상처받을 거고. 아무말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이쌤을 힐끔 쳐다보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위로 받을 거라는 생각은 집어 치워, 나누리. 괜히 말했어... 괜히...


“술... 한잔 할래?”

이쌤의 그 말에 간신히 방어막을 쌓아 올리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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