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독일 초등학교(Grundschule) 2학년이었던 아들은 며칠 째 똑같은 소리를 계속 내고, 입을 쩍쩍 벌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원체 비염을 달고 있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아들을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갔다. 의사는 코와 목 등에는 이상이 없지만 불편감을 느끼는 아이를 위해 케모마일 차를 처방해 줬다. 괜찮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찜찜함을 안고 나오는데, 의사가 나만 진료실로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독일 생활 2년 차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환경이 낯설게 바뀌어서 온 '틱'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아이의 소리와 행동에 지나친 참견을 하지 말고 잘 살펴보라고 했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자그마한 아들은 힘들었나 보다.
마침 부활절 방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라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틱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듯했다. 개학 날에 맞춰 독일로 돌아왔는데, 기대와는 달리 아들의 증상은 다시 심해졌다. 학교에서도 그런 소리를 내는지 알아봐야 했다.
급한 마음에 면담 신청도 없이 무작정 학교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방학 전에 시작된 아이의 "흠흠.. 악악.." 소리와 입을 벌리는 행동에 신경 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난 선생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다. 한국인은 찾아보기도 힘든 동네였는데 아들이 입학한 다음 해에 한국인 형제가 전학을 왔다. 외국에서 그것도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난 한국인 가정이 몹시 반가웠다. 더군다나 내 아들 또래의 그 집 형제는 무척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내 아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그 형제는 학교에서 심심찮게 문제를 일으켰고, 선생님들은 형제의 부모와 상담을 했지만 그들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내 아들도 피해 학생일 수 있다고 하면서 일주일 후면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 옆에 앉았다.
"아들.. 혹시 개들이 너 괴롭혀?"
아들은 입을 삐죽삐죽하더니 이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작 8살밖에 안 된 녀석의 울부짖음은 엄마의 가슴을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그 형제는 내 아들 음식에 침을 뱉었다고 했다. 독일 음식 먹는 독일 놈이라고 하면서. 선생님들이 안 보는 곳에서는 내 아이의 물건과 옷을 던지면서 욕을 했단다.
애써 침착한 톤을 유지하면서 왜 엄마한테 말 안 했냐고 물었다. 아들은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9살, 10살이었던 형제는 아들의 입을 막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럽게 그토록 서럽게 울면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아들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장면 장면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는 기억이 있다. 두려움과 서러움과 안도감이 담긴 8살 아들의 눈물범벅 얼굴, 그리고 울음소리가 나에겐 그렇다.
선생님과 면담 후, 일주일 동안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아이의 증상 계속 됐다. 그리고 매일 나에게 물었다. 그 형제가 한국으로 떠났냐고.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난 아이의 물음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