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낯선 행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은 Mar 10. 2019

반티에이 쁘리읍



  반티에이 쁘리읍


오랜 전쟁 끝에 국경지역에 있던 난민들이 고국인 캄보디아로 들어오면서 난민캠프에서 함께 지내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봉사자들이 함께 캄보디아로 들어왔습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캄보디아 땅에서의 생활은 캄보디아인들에게 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가난은 지속되었습니다. 예수회는 그런 캄보디아 안에서도 가장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전쟁에 끌려가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과 무분별하게 심어 놓은 지뢰 때문에 장애를 입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가난한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것은 가장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짐이었고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캄보디아 마을을 돌아다니며 장애인 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분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습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은 199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지었습니다. 학교는 전쟁 때 군대가 주둔하던 곳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킬링필드의 한 부분인 이곳에서 상처 받은 분들의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직업훈련을 위해 전문가들을 초대하고 4개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특수교육반을 포함해 총 7개 과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모두 이 학교 출신입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에서 교육을 받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같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반티에서 기술교육을 받았던 경험으로 누구보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정성을 다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예수회는 단순히 그분들에게 기술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내전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들 사이는 불신이 가득했던  사회에서 온전히 존재만으로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사랑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학교에 기숙사를 만들고 공부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케어해주고 서로에게 의지 할 수 있는 생활의 모습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장애는 업보라고 하여 전생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심한 경우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방안에 가두어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마을을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공동체에서도 소외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의 공동체 생활은 가족에게 조차 소외된 분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기도 하고 합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의 졸업생들에게 학교 생활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친구가 생겨서 좋다’라고 합니다. 기술을 배워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는 아주 오래된 불교국가입니다. 불교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종교의 의미를 넘어 그들의 문화이며 생활 그 자체입니다.  마을마다 사원이 있고 그 사원은 마을의 중심이었습니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 아픈 병자들까지 마을의 사원들은 그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반티에이 쁘리읍 기술학교를 짓고 학교 안에서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는 분들과 함께 하는 삶 자체가 선교라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캄보디아식 행사나 명절 때면 동네의 스님들을 모시고 전통식으로 행사를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행사 때도 스님들을 모시고 함께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신부님들은 때때로 사원에서 하는 행사에 초대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의 전통과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갑니다.


30년 가까이 장애인들과 함께 한 <반티에이 쁘리읍>은 학교를 넘어 커다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매년 1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졸업생들을 초대하여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홈커밍데이가 있습니다. 그날은 사회에 나가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나갔을 때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장애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졸업식에서 한 신부님이 이런 연설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티에이 쁘리읍>에서 일 년간 함께 살고 공부한 학생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장애를 가져서 못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해내었고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 변화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들도 장애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점차 변할 거라고 말입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은 장애를 가진 분들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는 활동가들 뿐 아니라 방문객도 <반티에이 쁘리읍> 학생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팔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가방을 들어주거나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를 때는 휠체어 탄 친구들이 자신의 휠체어에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서로가 채워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풍족함속에서도 항상 불만이 많았던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에서 함께 살고 있는 활동가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반티에이 쁘리읍> 학생들은 신체에 장애가 있지만 우리는 마음에 장애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것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회분위기 안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반티에이 쁘리읍>에서 생활하며 깨닫습니다.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캄보디아 말이 서툽니다. 말이 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활동가에게 어떤 <반티에이 쁘리읍> 학생은 당신은 외국사람이니까 캄보디아 말이 서툰 것이 당연하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주는 마음이 <반티에이 쁘리읍>에 있습니다. 조금 서툴고 느리더라도 기다리며 함께 가는 것을 배웁니다.


<반티에이 쁘리읍>의 학생들은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합니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할 수 있고 적게나마 돈도 벌 수 있어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입니다. 장애에 대한 사회의 변화가 느려도 <반티에이 쁘리읍>은 꾸준히 장애인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휠체어를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