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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은 Jul 10. 2024

<슬로웨어> 바지단을 모아모아

<슬로웨어> 바지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


남성복의 바지는 보통 길게 나온다. 그리고 아예 잘라서 고치기 편하도록 바지 밑단을 간단한 마무리 한 상태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 바지 밑단 원단들은 이태리 브랜드 <슬로웨어>의 바지를 자르고 난 후 남은 원단들이다.



슬로웨어는 특히 바지가 유명한데 후염을 해 자연스러운 색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패턴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라고 알고 있다. 이태리에서 생산된 원단을 쓴다는 자부심도 있다.

https://www.ssfshop.com/SLOWEAR/main?brandShopNo=BDMA07A32&brndShopId=ECBSV



<슬로웨어> 바지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세탁소에 차근히 쌓여가는 바지조각들을 모으다 보니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잘라서 조각보처럼 만들기에는 원단이 두꺼웠고 많이 모아두니 꽤 무거웠다. 누가 봐도 바지 밑단인 상태에서 잘라서 사용하기보다는 그 모양 그대로 사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잘린 바지단들을 또 자르지 않고 뭘 만들 수 있을까? 원형으로 배치해 러그를 만들어 볼까? 바지단에 걸려 넘어지려나?



바지단들을 겹쳐 배치하고 잘린 쪽이 보이지 않게 배치해 보았다. 켜켜이 쌓이는 색들이 ‘기와’를 쌓는 것 같기도 하다. 두 겹이라 더 입체적이기도 하다. 지붕에 기와를 쌓듯이 배치하다 보니 가로로 넓은 것보다 세로로 길어지는 모양이 겹쳐지는 결을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바지밑단들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두 겹(원통형)의 원단을 겹쳐 박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얇은 광목원단을 원하는 크기로 자르고 그 위에 바지밑단을 다 배치해 보고 광목 위로 옮겨 아랫부분부터 차례대로 박아 나갔다.





바지단의 무게가 있어 좌우균형을 맞춰야 했다. 이 작업은 캔버스에 붙어있는 작업이 아니라 매달아 놓아야 하는데 힘을 받아 지탱해주어야하는 밑 천이 얇아서 한쪽으로 무게가 몰리면 삐뚤어져 보였다. 한두 칸씩 올려 배치하고 핀작업 후에 매달아 보고 재봉질하고, 이런 방법으로 바지를 쌓아 올렸다.

2m 정도가 완성되었고 맨 위부분에 힘을 받을 수 있도록 단단한 청바지 원단을 바이어스방식으로 말아 박았다. 작업하면서 구겨진 원단을 펴기 위해 임시로 방문 앞에 커튼 폴대를 설치하고 매달아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다. 꽤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폴대는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  


뒤에 받쳐주는 광목이 너무 얇지 않을까 했지만 완성되고 나니 은은하게 비치는 바지단들이 나쁘지 않았다. 앞도 중요하지만 뒷면도 중요하니까.





'커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슬로웨어> ‘가림막’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계단실 가림막으로 설치해 보고 안방문에도 설치해 보았다. 계단실에 사이즈가 맞는 듯해서 여름철 에어컨을 켤 때 쓰면 좋을 것 같다. 위아래층 한쪽만 에어컨을 켜면 가림막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방문 앞에 임시로 설치했다. 여름에 방문 열고 사는데 가림막으로 쓰기 좋겠다 싶어 사용 중이다. 색상이 좀 더 컬러풀했으면 좋았겠지만 이 브랜드의 색이니 어쩔 수 없다



만들면서 종종 웃음이 났다. 바지단이 쌓여가는 모양이 재미있기도 하고 바지단의 모양 그대로 가림막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쓸모를 잃은, 쓸모에서 떨어져 나온 쓰레기? 를 모아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 준 것 같아 즐거운 작업이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과정이 재미있으면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쓸모를 바꿔주는 작업은 재활용이라는 의미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소재로서, '헌것'이 아닌 새로운 소재로서 인식되길 바란다. 용도의 변경보다는 '쓸모의 탄생'이 되길 원한다.


물건의 용도는 물건과 사용자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의자를 책상으로 쓸 수도 있고 화분 받침으로도 쓸 수 있다.  가방을 물건을 담아 들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라 물건을 그냥 담아두는 보관의 의미로 쓸 수도 있다. 음식이 담겨 있던 캔(can)을 화분이나 연필꽂이로 쓰는 것처럼 관계의 변화는 새로운 쓸모를 탄생시킨다.


재활용이 무조건 친환경이라도 생각하진 않는다. 재활용도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재활용이라서 가치는 어디서 오는 걸까 고민하다 시작한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용도: 쓰이는 길, 쓰이는 곳

쓸모: 쓸만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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