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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Oct 10. 2016

흑백필름 이야기_#11.

가방을 고치다.

  가방을 고쳤다. 오륙 년은 족히 사귄 통학길의 친구였다. 원래는 디자인과 색이 맘에 들어 샀었는데 원체 투박하고 단단한 재질로 태어나 오래 사귀게 되었다. 무식한 공대 전공 서적 두어 권을 업고 만원 지하철에 이리저리 치이다 금세 작별을 고한 다른 친구들과 달리 끝까지 내 곁에 남아주었을 정도로. 애초에 가방 지퍼가 뻑뻑하게 나온 탓에 두어 번 터진 적도 있었는데 다른 부분이 너무 성한 것이 민망해 언제나 고쳐 썼다. 그러다 작년에 새 가방을 샀던 즈음 또 지퍼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은 방 한구석에 입을 벌리고 앉아만 있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해 뭐든 품에 끼고 사는 탓에.  


역시나 새로 산 가방도 채 일 년을 버티질 못했다. 
이제는 물건을 험하게 쓰는 내 손을 탓해야 하건만.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던 친구가 떠올랐다.  

  무작정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가 몇 군데의 수선집에서 퇴짜를 맞았다. 가방 지퍼는 옷의 그것과 달라서 다루지 않는단다. 문득 저번에 고칠 때는 구둣방을 찾았던 기억이나 길가의 구두 수선집을 찾았다. 분명 자주 걷던 길가에서 매번 지나치던 곳이었음에도 기억을 겨우 더듬어 위치를 떠올렸다. 필요에 없이 스쳤던 인연을 다시 만나 그 이름이 희미하듯.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그저 같은 나무. 같은 하늘.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한 평 남짓한 구둣방에 들어섰다. 매번 길가를 지나다 주인의 말벗이 돼주시는 듯한 단골손님이 이내 자리를 비켜주셨다. 가방지퍼를 고쳐주실 수 있으시냐 여쭤보니 슬쩍 빈자리를 가리키신다. 가방을 건네드리니 별거 아니라는 듯 지퍼 이음새를 매만지셨다. 금방 끝나니 자리에 앉으라 신다. 수년의 겨울 동안 주인의 벗이었을 오래된 버너와 까맣게 그을린 양은 주전자만큼이나 그을린 벽 사이 공간에서 지팡이 형태로 닳은 양초를 꺼냈다. 가방의 밑부터 입구까지 전부 이어진 꽤 긴 지퍼라 한쪽 끝에서부터 천천히 양초를 펴 바르기 시작하셨다. 고장 난 부분이 있는 곳까지 절반 정도 펴 바르신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 절반 정도 바른 뒤에는 가방 안쪽으로 같은 작업을 이어가셨다. 문제가 되던 부분을 찾고선 신기하게 생긴 도구로 이음새를 조정하고. 양초를 바른 부분을 불로 한번 지지며 마무리 작업을 하시나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쪽으로 손을 넘기셨다. 아까만큼의 시간이 흘러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볼까 했더니 이제는 부탁드린 적 없는 옆주머니 지퍼들의 차례다. 결국 모든 주머니 지퍼까지 꼼꼼한 양초 작업이 끝난 뒤에야 주인께선 만족하신 표정으로 양초 부스러기를 털어내시며 고개를 드셨다. 

한 계단, 한 계단. 서두르지 않으며.


교과서에서 보았던 ‘방망이 깎던 노인’이란 수필이 생각났다. 
차 시간에 재촉해도 절대 물건을 내놓지 않던 노인의 손과 멈추는 법 없이 흐르는 시곗바늘을 번갈아 쳐다보다 아내의 칭찬에 무색해진 남편의 시선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주인은 가방을 고치는 내내 이런저런 조언도 곁들이셨다. ‘플라스틱 지퍼가 금속 지퍼보다 질이 좋음에도 디자인 때문에 금속재를 많이 써서 고장이 잦다.’ 라던가 ‘요즘 친구들은 지퍼에 양초 칠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렇지 요새 가방도 지퍼에 양초칠을 해줘야 좋다’, ‘철로가 날씨에 따라 늘고 줄어드는 것처럼 지퍼도 그래서 금속재는 겨울에 안 쓰는 게 더 좋다’와 같은. 그렇게 주인의 손과 말을 쫓다 수리 값을 치르고 인사와 함께 구둣방을 나왔다. 고쳐는 졌지만 완벽하지는 않으니 신경 써서 여닫으라는 말을 상기하며 몇 번 지퍼를 매만져 보았다. 고장 난 채 한편에 누워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다시 맞아 들어갔다. 좋은 가방이니 오래 쓰라는 주인의 말이 어깨에 닿은 채로. 


  지퍼는 반대편의 상대와 맞아 들어야 닫힌다. 아귀가 맞지 않으면 틀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무리한 힘도, 뻑뻑함도 온전히 버텨내다, 혹은 버텨내는 것처럼 보이다 단 한 번의 어긋남으로 모든 게 틀어진다. 몇 번 정도는 고장 난 부분을 덮어두거나 어찌어찌 맞추어 쓸 수는 있지만. 결국 그 부분이 터져나간다. 제대로 고치기 전에는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그렇다. 틀어진 관계는 고치려는 노력 없이 되돌리지 못한다. 노력으로 고칠 수도, 고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의 관계는 대신 고쳐줄 사람이 없으므로 고장 나더라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 오롯이 나와 상대만의 일이며, 누구도 개입되지 못해 나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지퍼와 달리 수만 갈래의 관계를 다시 보고 후회하며 아파하고 바로 잡길 시도한다. 장인처럼 두텁고 익숙한 손놀림이 아니라 엉망이 되더라도. 너와 나의 얽힘은 오이디푸스의 매듭이 아니기에. 

수만 갈래의 관계는 하나로 이어져 손쓸 도리가 없다.


제일 좋은 것은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루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고쳐졌다면 단지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장인의 손길로 정성스레 지퍼를 고치고서 몇천 원을 부른 주인장이 아니더라도. 그의 손처럼 사람의 관계를 고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바다를 건너서라도, 억만금을 주어서라도 그를 찾아갈 것이다. 그럴 수 없기에 고장 나도 버리지 못하며, 매번 소중해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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